구승회 동국대 교수·철학
‘자유주의·자본주의의 승리로 역사는 끝났다’는 후쿠야마의 예언이 맞든지 틀리든지 간에, 오늘날 세계는 급속히 자유주의로 수렴해간다는 사실에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는 ‘자유주의의 보편화’라는 세계이념이요,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보편화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이념이다. 자유주의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동 및 상품의 자유로운 교환을 보편화하라는 압력이다. 자본과 상품이 세계화될수록 거주, 이주, 노동, 인류의 보편적 복지는 더욱 반(反)세계화 한다.
인권의 무제한적 보편성에 비추어 보면 한 국가 내에서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국가간이라고 해서 제한받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경은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며, 세계 노동시장은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자유주의를 만들어낸 서구의 모든 나라들은 예외 없이 까다로운 이민 절차와 심사 기준을 정해 놓고 있으며, 불법 이민의 방지와 추방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인류 보편의 자유’는 글자 그대로의 자유가 아니라, ‘문화 특수적 자유’이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그들도 인류 보편의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기피하는 일자리를 외국인으로 메울 수밖에 없는 그들로서는 돈벌기 쉬운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일자리 많은 나라, 대한민국은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조성한 환경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역시 수혜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하기 좋은 환경’을 독점하려는 것은 인종적 이기주의(쇼비니즘)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거기에는 명백한 자기모순이 숨어 있다.
우리는 일본이 재일교포들에게 참정권을 불허하는 것, 거주 등록시 지문날인 제도를 시행하는 것, 미국이 입으로는 가장 친한 나라라고 말하면서도 우리에게 까다로운 입국 비자를 요구하는 것, 중국 공안이 처절한 실존적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을 강제 소환하는 것에 대하여 신성한 인권의 보편성을 거론하면서 분노한다.
이처럼 보편적 인권을 숭상하는 우리는 4~5세대 동안 이 땅에 살아온 화교들에게 자장면집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거주·교육·재산 취득 등 온갖 제한과 불이익을 주고 있으며, 몇 년을 살았건 모든 외국인은 3~6개월에 한번씩 거주허가를 경신하도록 하는 외국인 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동포와 사할린 동포의 영구 귀국을 제한하고 있으며, 탈북자의 입국을 거부하고, 우리가 더러워하는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냉대하고 멸시한다. 하물며 탈북한 국군포로조차도 훈장은 고사하고, 재입국마저도 기꺼워하지 않는다.
최근 외국인 불법체류자 처리문제로 외교통상부와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물론 그들은 외국인이다(중국동포 역시 중국국적자들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의 규약에 따라 처리되는 것은 당연하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이방인을 환대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낯선 곳에서 적대적으로 대우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16만명에 달하는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기에 앞서 ‘내일 아침 쓰레기는 누가 치울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35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일자리를 침탈한 노동이민자들이 아니라, 우리의 3D업종이 세계화되어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로 수출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한국에 들어 온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이동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