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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저녁 7시, 서울 동산불교대학 3층 법당. 지운 스님(전 송광사 강주)이 40여 수련생을 상대로 ‘자비수관(慈悲手觀)’의 원리를 강의하고 있었다.
조용한 장소에서 집중력을 요하는 다른 수행법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자비수관은 비교적 쉬우면서 단기간에 몸과 마음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수행법. 3년여 전부터 송광사, 봉인사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수행법은 ‘송광사를 사랑하는 모임(송사모)’ 회원이나 동산불교대 수강생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자비수관이 정립된 배경에는 간화선 등 전통수행법에 어려움을 느낀 불자들이 단기간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른바 ‘제3 수행법’에 몰리는 현상이 한 원인이 됐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던 지운 스님은 위빠사나와 밀교 수행이 가미된 자비수관법을 발견하고 이를 직접 체험하면서 대-소승 경전상의 교리적인 배경도 갖추었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의 설법을 들으면서 일부 힌트를 얻기도 했다는 스님은, 1주일 단위로 신도들의 수행을 점검하며 바른 수행관을 정립하는데 심혈을 쏟고 있다. 지운 스님으로부터 자비수관의 수행 원리와 행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수행법의 요체가 ‘자비수관’이란 말에 다 들어있는 것 같은데요.
“불보살의 수인(手印) 중에는 다섯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시무외인(施無畏印) 또는 시무외수(施無畏手)라고 하는데, 이는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괴로움에서 구원해 주는 자비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비수관 즉, 자비의 표현인 ‘마음의 손’은 시각화한 가상의 손입니다. 집중을 극대화시켜서 관(觀)을 도와주고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사랑과 연민을 일깨우는 방편입니다.”
▶자비와 손(手), 관(觀)의 세 요소가 갖는 기능이 궁금합니다.
“자비수관의 손은 집중의 한 표현으로 법이 나타나게 하는 도구이며, 자비는 나타나는 법(法)을 가로막은 업(질투, 자만, 성냄, 해침, 거침, 폭력, 살생 등)을 녹입니다. 그리고 관은 관조(觀照)로서 ‘자비 손’의 도움으로 대상을 꿰뚫어 삼법인을 가려내는 능력입니다. 이 세가지가 어울려 하나로 작용해서 법을 체득하면, 마음이 청정해져 법계(法界)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원리는.
“‘자비 손’을 빌려서 몸이 갖는 땅, 물, 불, 바람의 4대(大)와 공(空)의 성품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은 지혜를 개발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자비 손’으로 5대(4대와 공)라는 성품을 직접 대면하면 몸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실체가 없는 공의 모습을 드러내고, 자아가 본래 존재한 적이 었는 무아의 지혜가 생깁니다. 자비심에 의해서 몸속의 생명에너지는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 되어 업이 바뀌면서 깨어납니다.
즉 땅, 물, 불, 바람, 허공 등 5대의 에너지로 결합된 몸이 양파껍질이 벗겨지듯이 해체됩니다. 마지막 양파껍질이라 할 수 있는 공대(空大)만 남았을 때,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는 힘으로 ‘자아’와 ‘내 것’이 단지 개념일 뿐, 실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아는 사라지고 깨어있는 마음인 무아, 무특성의 공성(空性)을 깨닫게 됩니다.”
▶몸에 대한 관찰이 깊어지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지→수→화→풍→공의 순서로 관찰이 깊어짐에 따라 관하는 마음이 부분에서 전체로 바뀌는데, 이것이 관자재(觀自在)로 가는 방편이 됩니다. 자비의 모습인 5대의 손이 지, 수, 화, 풍, 공에 관계되는 업장을 소멸시켜 몸을 정화해서 몸의 고통과 속박된 마음을 자유롭게 하므로써 의식이 청정해지면서 우주 의식으로 확장됩니다.”
▶5대와 마음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나요?
‘마음 손’으로 오대를 관찰해나가면, 몸은 업이 정화된 지수화풍공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만 인식되는 경지가 이뤄집니다. 마음만 남는 상태가 되는 것은 5대가 근본마음에서 나왔으며, 마음에 의해서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비 손에 의해 오대는 모두 마음의 모습으로 환원되어 그 근원인 한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몸을 관할 때 정념과 지혜, 자비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자비수관에서 관은 정념에서 지혜로, 다시 이타행의 자비로 전환됩니다. 정념은 혼침과 들뜸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선정과 지혜를 균등하게 합니다. 몸과 마음이 무상, 고, 무아임을 정념하면, 이 정념이 반야지혜로 전환합니다. 반야지혜가 일체중생에게 회향되면 자비심으로 변해 중생을 구제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념, 지혜, 자비가 관의 모습이며 수행의 진전에 따라 전환되는 것입니다.”
▶자비수관에는 대-소승의 수행 원리가 담겨있는 듯 한데요.
“몸에 ‘자비 손’을 작용시키면 무상, 고, 공, 무아에서 궁극에는 불생불멸의 열반에 이르는 지혜의 길을 알게 됩니다. 이 자비심은 몸에만 한정되어 진리를 맛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주변환경에까지 하나로 연결시켜 연기실상의 진리도 가르쳐 줍니다. 자신을 본다는 점에서 대승 위빠사나와 간화선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되며, 대승적 경지의 보리행을 따르니 정법에 충실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