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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은 오는 22일 오전 10시 용주사에서 학교법인 동국학원장으로 봉행된다.
정대스님은 입적에 앞서 ‘來不入死關 去不出死關 天地是夢國 但惺夢中人(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갈 때도 죽음의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며 임종게를 남겼다.
1937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1962년 전북 완주 위봉사에서 전강(田岡)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62년 용화사에서 전강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67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도봉산 망월사 선원을 비롯해 수덕사, 용주사 중앙선원 등에서 수행정진했다.
스님은 은사인 전강스님으로부터 ‘板齒生毛(이빨에서 털이 난 도리가 무엇인가’를 화두로 받고, 그날부터 자신의 전신을 견성(見性)의 열정으로 채워 정진(精進)에만 몰두했다. 3년동안 ‘판치생모(板齒生毛)’의 화두를 놓고 용맹정진한 스님은 불조(佛祖)의 진면목을 참구한 끝에 ‘중생과 부처가 다름이 없고, 마음 밖에 부처도 중생도 없음’을 자증(自證)하고 견성(見性)을 이루었다.
정대스님은 종단 중흥과 포교에도 남다른 원력을 갖고,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재무부장 총무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중앙종회 부의장, 중앙종회 의장 , 용주사 주지 등을 거치면서 종단 중흥과 안정화에 기여했다.
스님은 지난 99년부터 11월 20일 종도(宗徒)의 간절한 원력을 받아들여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여 종단의 혼란을 수습하고 종단 안정화와 중흥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정대스님은 1999년 12월부터 2003년 2월까지 3년여간 총무원장에 봉직하며 종단의 숙원 과제로 남아있던 중앙승가대 이전불사를 완료했고,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 건립의 초석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유산과 사재를 출연하여 은정장학재단을 설립,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업에 전념하는 인재들을 지원하는데 힘썼으며, 지난해 12월부터 열반직전까지는 조계종 종립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