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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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운동 펼치는 소설가 한승원씨
“율산마을의 해산토굴이라고 혹시 아시나요?”
“알다마다, 한승원 선생님 만나뵈러 왔구마잉. 한 20분 달리면 된당께.”

유독 뛰어난 문인을 많이 배출해 낸 전남 장흥. 이청준, 이승우, 송기숙 등 걸출한 작가들의 고향인 이곳에 최근 몇 년간 문학과 예술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연어가 제 난 곳을 향해 회귀하듯, 자신의 근원을 찾아 서울서 귀향한 작가 한승원(65) 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장흥 바닷가에서 삶과 문학의 팔할을 키운‘그’와 그 근원인‘바다’를 대면하려는 발걸음들이다.

“바다를 보면 자비와 불성, 그리고 우주적 시원까지 모두 다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화엄(華嚴)의 바다’라고 이야기하지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산토굴 평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 씨가 입을 열었다. 두툼한 개량한복을 스친 바닷바람이 풍경을 울리자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내어주며 얘기를 계속했다. 그가‘바닷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바다의 시간과 순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살아온 지는 벌써 8년째. 장흥의 바닷가 마을 토굴객으로 지내면서 17년 서울 생활에서 담을 수 없었던 ‘상생’과 ‘연기’의 화두를 바다를 통해 자유롭게 풀어가고 있노라고 했다. 그가 그러한 세계관으로 구상한 작품들은 현대 ‘불교 문학’의 흐름 위에 생생히 살아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같은 소설만이 불교문학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교적 소재가 불교문학의 필수조건은 아니죠. 불교문학은‘정제된 영양제’와 같은 것입니다. 삶 속의 진리를 압축해 문학적으로 승화한 영양제 말입니다.”

불교문학의 침체를 우려하는 질문을 던지자 한 씨는 “불교가 ‘습윤(濕潤)’된 작품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고 응수한다. 불교사상의 일반화에 따른 결과다. 불교는 철학, 신화, 생태주의 등 다양한 형태로 인문학에 녹아들었다. 특히 문학자들에게는 경전 읽는 것이 하나의 과제처럼 받아들여져, 많은 작가들이 경전에서 문학적 모티브를 얻고 있다고 한다.

“불교경전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물섬과 같습니다. <백유경> 속의 이야기들은 재래설화처럼 읽히고 있지만 실은 경전이지요. 또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작가들의 시에는 경전 어구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작가들이 자기 생각인양 차용해 버리는 데에 있습니다. 오랫동안 경전을 공부해 온 사람은 ‘사상의 습윤’인지 ‘무차별 모방’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요.”

필요한 것은 정신이지 외피가 아니라는 한 씨. 그의 말 속에는 절절한 경험이 녹아있다. 그는 젊었을 때만 해도 예수나 부처나 다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에 불상에 경배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탁발나온 스님의 염불소리가 좋아 며칠을 되새기기도, 서라벌 예대 재학 시절 수업을 함께 듣던 스님의 암자에서 몇 달을 기식(寄食)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불교를 가슴에 담을 수 없었다. 실존주의가 팽배했던 시절 불교철학을 논하며 사상적으로도 가까워졌지만, 스스로 불자라 부를 자신은 없었다.

“제자의 실재 이야기인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쓰면서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쓰는 도중 많이 아팠는데 ‘이 소설만 쓰고 죽게 해달라’고 빌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지요. 이 작품을 제대로 마무리짓고 전 불자가 됐어요. 부처님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고,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이 곧 나와의 약속이라 받아들이게 됐지요. 그 과정에서 불경 공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듯합니다. 현재 제 소설 뒤에 응화(應化)처럼 자리 잡고 있는 불교사상은 그 시기를 거치며 견고해 진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는 글을 쓸 때도‘똑같은 문장을 똑같은 색깔로 만들면 수 년 내로 도태된다’는 생각으로 날마다 새로운 ‘지금-여기’를 꿈꾼다. 그래서 과거 본인이 쓴 소설이 정확히 몇 권인지, 작품을 논하는 문객들의 평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만조의 바다를 보며 상념에 잠길 때나,‘동물의 왕국’혹은‘6시 내고향’에 온 신경을 쏟아 부을 때도 그의 관심은 늘 ‘지금 이 순간’이다.

그 때문에 그는 문단 내에서도 배움에 있어 멈추지 않는 열정을 쏟아붓는 작가로 유명하다. 30년 동안 이야기해온 그의‘바다’가 늘 새로울 수 있었던 것도 해양학, 철학, 신화 등을 두루 섭렵한 그의 폭넓은 사고에서 기인한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문화소외지역인 장흥에서 지역문화운동도 시작했다. 삶 속에 녹아있는 불교를 이야기하며 지역민과 다양한 문화행사 또한 기획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문학 현장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현장비 밖에 없지만,‘장흥’을 문화마을로 꽃피우기 위한 지역예술인들의 마음은 각별하다. 모든 성취는 의미있는 발걸음이 하나 둘 이어지며 이뤄지기에, 앞으로 계속될 그들의 움직임에 쏠린 시선들이 변함없이 기대에 차 있다.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3-11-15 오전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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