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는 스미스는, 네오와 만나 이렇게 얘기한다. "외형은 속임수이고 우리의 존재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실은 자유롭지 못해서야. 이유나 목적은 부정할 수 없지. 우린 목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우린 너 때문에 존재한다"의 존재가 너 때문이며, 결국 너와 나는 동일하다라는 스미스의 인식은, 3편에서 오라클이 네오를 보고 "스미스가 곧 너야"라는 말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네오와 모피어스는, 매트릭스의 원천인 소스로 들어가는 길을 알고 있는 키메이커를 찾기 위해 정보거래상과 마주한다. 정보거래상은 "이 세상에 불변하는 진리는 하나밖에 없다. 인과관계. 작용과 반작용, 원인과 결과"라고 말한다. 그것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과 맞닿는다. 모든 것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의식,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는 것은, 3편의 핵심 화두인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로 선명해진다.
이것은 업의 변용에 다름 아니다. 욕망과 집착, 괴로움에서 눈을 떠서 진실된 자신의 마음을 찾고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려는 불교의 교리는 '매트릭스'에 그대로 적용된다.
매트릭스를 창조한 설계자는, 네오는 여섯 번째 '그'라고 말한다. 왜 여섯 번째일까?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투신 여섯 번째 부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세계가 소멸하고 또 새로운 우주가 오면 새로운 부처가 나타나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네오는 미망에 빠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여섯 번째 부처이다.
3편의 마지막에서 기계의 심장부로 진입한 네오가 평화를 외치며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조건으로 타협을 시도하는 것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의 마지막 죽음을 상기시키지만, 기독교적 희생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선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중도의 불교사상과 더 가깝다. 정립과 반정립의 극단을 종합하여 양쪽을 다 살려내는 것이 불교의 중도이다. 그것은 인식론적 측면에서 실천의 의미를 강하게 띄고 있다. 시리즈를 마감하는 대단원의 막은 네오의 중도사상에 의해 끝난다.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에서 신앙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들은 "불교와 수학, 특히 양자물리학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고, 그 둘이 접합하는 지점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불교에 매혹당해 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불교와 양자물리학이 만나는 지점, 바로 그곳에 '매트릭스' 사상의 핵심이 위치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하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