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과 사이버세계가 인드라망에 걸렸다. 고려대장경연구소의 ‘불교와 과학과 철학’(10월 31일 서울대),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과 전자상거래연구소의 ‘불교의 화엄세계와 유비쿼터스 정보기술의 만남’(11월 4일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세미나가 바로 그 자리.
2500여년전 부처님의 사상인 인드라망이 21세기 첨단과학인 양자역학과 사이버세계와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엄경>에 나오는 그물인 인드라망은 세계의 모든 사물은 이 그물에 달려있는 구슬들처럼 서로 자신의 빛을 주고받으며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표현된다.
양자역학에서 미시세계의 개체가 서로 상관성을 보인다는 개념과 그물망처럼 얽힌 인터넷 네트워크와 그물코의 역할을 하는 컴퓨터가 만든 가상공간이 인드라망의 구조와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불교와 과학과 철학’에서 ‘양자론에 대한 몇몇 자연철학적 단상과 불교’를 발표한 최종덕 상지대 철학과 교수는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진 계체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상관성을 보이는 공동의 한 체계’라고 말한 닐스 보어(Niels Bohr)와 같은 양자역학자들의 주장을 기반으로 이를 인드라망과의 관계를 논했다.
최 교수는 양자 차원의 입자운동 상태를 인드라망 구조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전제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무경계의 마음을 다루는 불교의 언어와 경험세계의 경계를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자연과학의 언어를 그 외형적 유사성만으로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인간의 또 하나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 그는 “직접적인 비유가 나쁘다기보다는 이러한 비유가 불교의 신비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라며 자칫 불교가 과학에 편승해 신비화되거나 주술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또 그는 “양자상태와 인드라망 상태가 같다는 말을 통해서 현대 양자역학의 이론이 이미 불교에 다 들어 있었고 그런 이유로 불교 사상이 위대하다는 주장을 한다면 불교 스스로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언어적 비유는 윤회의 끝이 연기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수단에서 멈춰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불교는 ‘일체언어도단’이라는 명분 때문에 언어명제의 집합이었던 자연과학의 성과에 대해 너무 허약한 공리공담만으로 대처해왔다”며 “몇 가지 우려되는 갈등만 해소된다면 연기설 혹은 화엄의 관계론을 통한 과학과 불교의 실천적 소통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화엄사상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전개되는 현실에 대한 불교적 이해방식을 설명하는 논문도 있다. ‘불교의 화엄세계와 유비쿼터스 정보기술의 만남’에서 조준호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화엄사상과 사이버세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조 교수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반복적인 상호작용과 쌍방향성 소통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과 공동체가 형성된다”며 “이같은 사이버 공간의 속성은 화엄 불교 인드라망의 보석(객체)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것과 비교된다”고 강설했다.
사이버세계와 법계의 실재성과 가상성에 대해서는 “깨달은 자의 눈에 비친 세상인 법계가 비록 중생에게는 신비한 환상적 세계로 보일지 모르나,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실상·實相)이다”라며 “그러나 범부에게는 사이버 세계가 훨씬 경험이 용이하고 직접적인 경험내용을 준다는 점에서 사이버 세계가 더욱 참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화엄세계=실재, 사이버세계=가상 이라는 공식 아래 그는 마지막 충고를 던진다. “화엄세계건 사이버 세계건 그 기반은 현실이다. 현실에 발 딛지 않은 화엄세계, 사이버세계의 추구와 몰입이야말로 자기 기만적이고 도피적인 사이비(似而非)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