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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맨에서 문화재 사료수집가로 변신한 이순우씨
이순우(41) 씨에게 2003년 가을은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15년간 몸담았던 증권계를 떠나 ‘문화재 사료수집가’이자 ‘아마추어 문화재 연구가’로 인생의 2막을 연 해이기 때문이다.

1989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후 투자자문회사 상무를 거치며 증권과 투자에 관한 5권의 책을 펴내기도 한 ‘잘 나가는 증권맨’이었던 이순우 씨. 그런 그가 지난해와 올해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서보고서 1, 2권>을 펴낸 데 이어, 이제 본격적인 문화재 사료수집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증권계는 다른 직장에 비해 주5일 근무제가 일찍 시행됐습니다. 덕분에 주말이면 여행을 겸한 답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별다른 관념도 없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옛 절터를 기웃거리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안내책자마다 다르게 표기된 문화재에 대한 설명은,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던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답사를 다닐수록 ‘이 유물이 왜 제자리를 떠나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고,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문화재들의 ‘역사’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궁금증이 생기면 끝까지 해결해야 속이 풀리는 성격 탓에, 그의 발길은 자연스레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이후 그는 문화재들의 흔적과 이동경위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수시로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들락거렸다. 점심 식사를 대충 해결하고 도서관을 찾기도 했고, 주말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나절을 자료조사와 복사로 보내기 일쑤였다.

“본디 제 있던 곳이 어디이고 또 어떻게 지금의 자리로 흘러온 것인지 그 내력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가 겪어야 할 서러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이 일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문화재에 관한 단 한 줄의 기록이라도 남아 있기를 기대하며 종일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적여야 하는 그의 애타는 심정을, 다음 연구자들은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기록 자체의 잘잘못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만한 눈썰미’를 갖추게 됐다. 틈틈이 정리해 둔 원고를 책으로 묶어낸 것은 이런 자신감 외에도, 사실관계의 서술이 뒤죽박죽되어 있거나 그 내용을 잘못 옮겨 적은 경우도 허다한 것을 보고 ‘내가 보고 듣고 알고고 있는 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월이 가고 또 사람도 가고 나면 모든 기억의 끈도 더불어 사라지고 맙니다. 때문에 사실관계의 확인과 기록이 남겨져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잘못된 기록이 별다른 의심 없이 후대에 계속 인용되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바로 여기에 기록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에게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원래 만들었을 때 지녔던 의도에 맞는 쓰임새로 남아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대상으로 제작된 불상이나 탑이 제자리를 떠나 ‘물건’이나 ‘소장품’으로 취급받는 것은 슬픈 현실이죠. 한번 제자리를 떠나간 문화재들의 운명은 모두가 불행하고 기구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재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는 것은, 혹여 제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단 한줄기의 희망만이라도 버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기록을 찾아주기 위한 그의 노력이 두 권의 책으로 결실을 보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그의 방 한켠에는 그가 전국을 다니며 캐낸 보물같은 자료들이 빛을 볼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투자를 위해서는 숨어 있는 우량 종목을 발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분석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문화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재에 숨은 역사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분석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비교 검토하면서 ‘흙 속의 진주’를 캐내기 위해 노력해야죠.”

현재 원주MBC 방송이 준비 중인 문화재 관련 다큐멘터리의 작가로 참여하고 있는 그에게 “이제 전문가가 다 됐겠다”고 질문하자 얼른 손을 내젓는다.

“저는 끝까지 ‘문화재 아마추어’로 남을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일은 문화재가 지닌 가치나 미술사적 의의를 짚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 문화재가 왜 여기에 있게 되었나 하는 단순한 사실을 정확히 기록해 주는 것입니다. 더불어 전문가들이 보지 못하는 새롭고 다양한 아이템들을 끊임없이 제기해 주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3-11-05 오전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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