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출가를 하셨어요?”
‘참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한 성직자들을 보면, 으레 불쑥 생각나는 질문이다.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무척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기도 하다. 성직자이기 이전에 한 가족의 자녀였던 이들이 가족과의 이별을 겪었던 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출가 이전의 삶에 대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뜻도 있으리라.
<출가>는 불교, 천주교, 원불교 세 종교의 여성성직자 12명이 ‘세계 평화와 종교간의 화합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족이 된 ‘삼소회’회원들이 출가 인연과 종교에 귀의한 후에 겪은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1988년 설립된 삼소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명상기도를 하며 종교간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다음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의 출가 사연을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진명 스님(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 진행)=제가 산문을 향해 길을 떠나 온 후로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뀌었네요. 처음 스님이 되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아버지는 ‘다리를 부러뜨려서 평생을 먹여 살려도 내 자식을 스님 못만든다’며 노발대발 하셨죠. 하지만 거듭되는 가족회의 끝에 ‘절에 가서 일주일만 살다 오너라’고 하신 말씀이 곧 출가 허락이 되었습니다. 수계를 하고 몇 년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그 겨울 내내 울어서 눈이 짓물렀고, 아버지는 제가 입고 있던 누더기 적삼을 보신 후 삼일 밤낮을 식음을 전폐하고 베갯잇을 적셨다고 하세요.
최주영 실비아 수녀(살레시오 수녀회)=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생후 8개월 된 조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어요. 결국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다 출가를 결심하게 됐지요. 저의 어머니는 성당을 한 번도 가신 적이 없으셨어요. 당연히 제가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많이 걱정을 하셨죠. 하지만 지금은 나의 참 모습을 해방시키며 나의 여행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혜명 스님(무안 용주사)=제가 출가하고 난 후 병석에 들었던 아버지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출가와 아버지의 목숨을 바꿨다’는 자책감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저를 함부로 살지 않게, 입고 있는 먹물옷의 의미를 자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최형일 교무(원불교 경기 파주교당)=저 역시 '죽어도 교무가 되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아버지에게 주먹으로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집을 떠나오던 날 아버지는 ‘이제 부모 슬하에서 떠나니 다른 교무를 부모처럼 모시고 살아라’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성공회 성가수녀회)=한국전쟁 통에 부모님을 잃은 저는 여동생과 함께 성베드로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을 터득하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1964년, 그렇게 수녀원에 첫 발을 디딘 후 벌써 40여 년이 흘렀군요.
혜조 스님(서울 청룡암)=저의 출가 인연을 지어 주신 분은 16살 때 만난 어느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의 ‘너는 중이 되어야 해’라는 말씀 한 마디에 출가를 결심했던 저는 한 치의 의심이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그해 삭도(삭발용 칼)로 머리카락을 밀었는데, 눈물도 나지 않고 그저 시원하기만 하더라구요. 출가 후 건강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 지금껏 수행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김지정 교무(원불교 도서출판 솝리 대표)=수행자들은 성자의 미소를 닮고 성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 안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출가를 했습니다. 욕심과 분심, 어리석음과 미움의 ‘집(家)’에서 참다운 ‘떠나기(出)’를 시도한 우리의 출가가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가 때의 초심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출가
삼소회 지음
솝리
값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