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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피어나는 ‘자비’ 무료안마시술
“부처님 뜻이 있었나 봐요. 절에 와서 오십견 치료를 다 하게 되네요. 선생님 허리도 좀 봐주세요.” 머뭇거리기만 하던 이계순 씨(38)가 허리도 들이민다.

“어휴, 보살님은 하루에 다 고쳐 갈려구 그래요.” 어깨를 주물러 주던 이찬 씨(57) 익살에 이내 법당 안은 웃음바다.

11월 2일 오후 1시 봉은사 선불당. 자녀의 수능시험 기도를 한 학부모들, 49재를 회향한 사람들, 일요일 법회를 봉행한 신도들 등 20여명의 신도들이 방석위에 피곤한 몸을 뉘고 있다. 지친 이들에게 안마를 해주고 있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모두 시각장애인들.

이날 봉은사 신도들에게 무료 안마·침술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혜광맹인불자회(회장 유정종) ‘자비손’봉사단. 점자·음성경전 발간 기금조성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15명으로 구성된 이들이 나선 것이다.

“억, 아이고···.” “선생님 살살 좀 해주세요.”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봉사단원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괴로운 듯 저마다 비명을 지른다. 아예 눈을 감은 채 어금니를 깨물고 고통을 참아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안마와 침술 시술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은 금새 밝아진다. 한결 몸이 가벼워진 표정들. 봉사단에 고맙다는 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은행을 줍다가 허리에 담이 걸렸다는 강상규 할머니(82)는 이정도 씨(50)의 시원한 손길에 평소 좋지 않던 발목까지 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럼요. 봐 드려야죠. 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이 씨도 시원해 하는 강 할머니를 보며 신바람을 낸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상인으로 생활해온 이 씨. 갑자기 찾아온 급성녹내장과 포도막염은 그에게서 세상의 빛을 앗아갔다. 사업에 실패해 직장생활을 해오던 그에겐 청천벽력이었다. 한동안 방황을 하던 이 씨가 희망을 되찾은 것은 맹인학교에서 안마와 침술을 배우고 난 이후였다.

“남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도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죠. 이젠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이 씨의 목소리에 희망이 묻어난다.

시각장애인들이 안마를 하고 침까지 시술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선뜻 치료에 응하지 못하던 회사원 이노준 씨(47)는 치료 후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이야 정말 신기하네요. 손끝 감각이 뛰어나서 그런지 한의사보다 실력이 더 나은 것 같아요.”

3시간 정도 계속된 봉사활동. 미영순 회장(사단법인 저시력인연합회)은 아쉬움이 남는다. “첫날이라 그런지 신도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았네요. 다음 봉사에는 더 많은 불자들이 찾아 주겠죠?”

그러나 자비손 봉사단은 실망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느낄 그날을 위해. (02)737-1053
이동혁 기자 | tonylee7@buddhapia.com
2003-11-03 오후 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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