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빚으며 흙과 함께 살리라.’
40년 이상 흙과 더불어 질박(質朴)한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찾아온 도예가 이종수(68)씨의 개인전이 11월 1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백자의 순수함을 담은 ‘잔설의 여운’, 흙과 불의 만남을 조형화한 옹기나 토기류 작품들을 선보이는 ‘마음의 향’ 등 두 가지 주제 아래 40여점의 작품들을 전시한다. 특히 신작 뿐 아니라 그의 40년 도자 인생 속에서 마치 친 자식처럼 애정을 가지고 곱게 간직해 온 희고 반짝이는 달 항아리에서부터 거칠고 투박한 항아리, 여러 다완(茶碗)과 주병(酒甁) 등 다양한 그릇들을 꺼내놓는다.
흙과 물, 불이 가지는 자연의 성질을 최대한 살려 도기(陶器)의 자연적 생명력을 극대화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씨의 도자기들은 은근하면서도 꾸준한 우리 그릇의 맛과 멋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호평 뒤에는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다. 이씨는 흙을 만지는 첫 단계부터 유약을 바르고 장작으로 불을 지펴 도자기를 골라내는 최후의 순간까지 철저히 옛날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도자에서 배어 나오는 아름다움은 구수하며 오래 볼 수록 정이 묻어나는 편안한 느낌을 준다. 또한 전래 토기나 옹기의 형태, 그리고 기름진 논바닥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재질감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그의 그릇들을 쭉 둘러보면 뽐냄도 초라함도 없고 당당하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중도적인 겸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79년 돌연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충남 금산으로 내려간 그는 작업장을 짓고 20여년간 그릇 만들기 삼매경에 빠졌다. 이제는 바람이나 별만 보아도 불을 때야 할 시기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는 그는, “도자기 만드는 일은 작가들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 고민하고 혼을 바치는 구도의 역정과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고행의 순간을 거쳐 그의 손에서 빚어진 도자기들을 보고 조각가 최종태씨가 “이종수 그릇의 미학은 충분히 의도했지만 그 의도가 보이지 않는 허수(虛數)의 아름다움이다. 은은한 자연미가 돋보여 안 만든 것 같은 아름다움이 나온다”라는 극찬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