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란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을 이어온 동서 교통로이다. 이 길을 통해 동양의 비단이 유럽으로 들어갔고, 페르시아의 유리그릇이 동쪽으로 전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각자의 문화를 주고받은 것이다. 그 속에는 음악도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는 사막길과 중국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바닷길 양쪽을 따라가며 그는 동ㆍ서 세계의 교통로였던 실크로드를 통해 오갔던 문물, 특히 음악을 새롭게 발견했다. 장구와 해금이 멀리 인도에서 전해졌고 비파가 이란에서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대 인도 문헌에서 우리 음악인 ‘영산회상’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장단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 음악을 세계적 지평에서 넓게 보는 눈을 뜰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중앙대 국악대학 교수인 저자가 20년 동안 실크로드를 오가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민족들과 그들의 음악을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를 비롯해 인도의 비나, 몽골의 마두금 등 다양한 민족과 그들의 음악, 악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나라의 문화, 예술, 역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 보따리도 넉넉하게 풀어 놓는다. 즉 음악을 통해 본 실크로드 문화를 엿보는 기행서인 셈이다. 그러나 단지 민속학적인 소개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타문화권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의 문화적 자화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인도 현악기인 ‘비나’를 타는 선생과 제자의 모습을 보고 소통의 전율을 느끼고, 영국 밴드 비틀스에 의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도 현악기 시타르 연주를 들으며 자유를 맛본다. 특히 어떤 음악에서든 진지함은 기교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중간 중간 삽입된 컬러 사진과 깔끔하게 편집된 책의 구성은 독자들에게 세계 음악과 문화, 더 나아가서 그 음악이 담고 있는 정신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가령 몽골에서는 찰현악기(활로 마찰시켜 소리내는 현악기)가 주술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자들은 이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든지, 동물의 울음소리나 새소리, 물소리를 흉내내는 것도 음악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저자는 ‘음악’ 하면 으레 자기네 전통음악을 가리키는 인도와 일찌감치 서양 음악에 안방을 내준 우리나라를 비교하면서 우리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다른 나라의 음악에 깊이 빠져들수록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더욱 절감한다는 대목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크로드, 길위의 노래
전인평 지음
소나무
1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