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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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한국 절은 있는데 한국 불교는 없다
온통 바위산으로 뒤덮인 사막 한복판. 미국 LA에서 북쪽으로 꼬박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캘리포니아주 중부 테하차피(Tehachapi)에 위치한 한국전통사찰 태고사. 사찰이 그렇게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다행히도 돌산을 비집고 자란 나무들이 태고사 주변을 감싸고 있어 그런대로 절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역만리 미국에서 한국의 전통사찰을, 그것도 사막 한가운데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한국불교도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가 아님을 웅변하는 것이다.

숭산스님 제자인 태고사 주지 무량스님은 미국인이다. 작업복 차림으로 온 종일 대웅전 불사에 매달리면서도 좌선정진을 거르지 않는다. 거리상으로 보면 찾는 이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매주 10여명 가량이 이곳에서 2박3일간 정진을 한다. 태고사는 미국의 한국 사찰 중에서도 한국불교의 전통 수행법을 체험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찾아 오는 이가 아직 많지는 않지만, 한국의 전통미를 그리워하고 있는 교포들과 한국의 전통수행법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는 미국인들을 위해 태고사는 조용하면서도 분주히 하루하루를 열고 있다.

태고사 방문 이틀 전인 10월 5일(한국시간 10월 6일) 조계종 출입기자단으로 구성된 미국불교 취재단이 미국에 발을 디디면서 맨 처음 방문한 곳은 미국 내 한국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LA 관음사다. 이곳에서 포교를 시작한지 올해로 30년이 됐으니 짧지 않은 세월이다.

이날 열린 관음사 일요법회에는 120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했다. 100여개쯤 되는 미국 내 한국사찰 중에서 법회에 이 정도 인원이 참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법회는 찬불가, 신입회원 소개, 공지사항, 헌금 순으로 진행됐다. 한국식보다는 ‘미국식’(교회식)에 가까웠다.

법회 참석자들 가운데 현지인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거의 예외 없이 교포들만을 대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 사찰들의 현실이 그렇듯이, 관음사도 현지인 포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LA가 미국 서부의 한국 불교 중심지라면 뉴욕은 미국 동부에서 한국 사찰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다. 많다고 해야 불과 15곳 정도지만 미국 내 한국 사찰 수로만 보면 LA 다음이다.

미국 내 한국 사찰 수는 현재 100여 곳. 캘리포니아 LA를 중심으로 한 남가주 지역에 27곳의 사찰이 있고, 그 다음으로 뉴욕 지역에 한국 사찰이 많다. 물론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북가주 지역과 워싱턴 DC, 시카고 지역, 시애틀-타코마 지역, 그리고 하와이 지역 등 한국 사찰은 전 미주에 분포돼 있지만 LA와 뉴욕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는다.

뉴욕은 다른 지역보다 사원연합회 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이다. 조그만 규모지만 사원연합회 사무실까지 마련해 놓고 <뉴욕 불교>라는 잡지도 발행하면서 한국불교 포교에 나서고 있다.

취재단이 8~9일 이틀간 방문한 뉴욕 소재 한국 사찰은 불광선원과 원적사. 불광선원은 호젓한 숲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전통사찰 면모를 갖추지는 못했다.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양주 보살마저 쓸 수 없는 형편이니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사실 미국 내 한국 사찰들은 거의 대부분 불광선원과 같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한국불교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따라서 신도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도네이션(기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찰들로서는 당연히 일이다.

뉴저지에 위치한 원적사에서는 비교적 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명상열풍이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원적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근래 들어 고등학교에서도 명상 동아리가 많이 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 청년들에게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7일 취재단과 만났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 불교학연구소장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정신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고 기독교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불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미국의 명상열풍을 전했다.

LA 고려사 회주 현호스님도 “최근에 젠(선)센터가 400여개나 늘어날 정도로 미국에는 불교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 맨하튼 번화가에 위치한 샴발라센터는 티베트의 명상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10일 샴발라센터를 방문한 취재단은 이곳의 수행 지도자 데보라씨에게서도 명상이 미국 사회에 급속히 파고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보라씨는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만도 350명이 넘는다. 유태인들이 자기 종교활동을 하면서도 명상을 배우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추세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데보라씨는 “한국의 간화선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없다”고 답했다. 사실 미국불교 취재를 시작한 지 6일이 지났지만 어느 누구로부터도 ‘미국인들이 간화선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1900년대 초부터 미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불교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티베트, 일본,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대만, 베트남 등 세계의 모든 불교가 들어와 있다. 가히 ‘불교백화점’이라 불릴 만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사찰들은 고군분투하며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한국불교의 전통과 색채를 띠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한국불교가 진출한 지 40년.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한국불교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 한국불교 활성화 위해서는

‘한국 사찰은 있는데, 한국 불교는 없다’
미국의 한국 불교 실정이다. 사찰들은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한국불교는 다른 나라 불교와 비교하면 왜소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체계적인 포교시스템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종단차원이 아닌 전적으로 개인의 원력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재원확보와 프로그램 운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종단과 연계한 해외포교 시스템 구축은 실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단적인 예로 뉴욕 불광선원 신도인 임상규씨(44)는 한글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교회에 보낸다. 한글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찰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찰들 대부분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다보니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영어에 능통한 스님들과 영역된 경전 및 한국불교 소개책자가 없는 것도 큰 이유다. 6박8일간의 미국불교 취재에서 만난 스님들과 신도들, 그리고 불교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한국불교를 알리고 싶어도 현지인들을 이해시킬 사람과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전통양식의 사찰이 없는 것도 한 이유다. 미국의 한국사찰들이 일반 건물에 입주해 있다보니 전통미를 살릴 수 없어 시각적ㆍ심리적인 흡인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큰스님 부재도 원인으로 꼽힌다. 달라이 라마나 숭산스님이 그랬듯이, 지명도 있는 스님들이 미국 법회를 자주 열어 한국불교와 간화선에 대한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한명우 기자 | mwhan@buddhapia.com |
2003-10-20 오전 8: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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