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불교계의 문화포교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 분야에 불교를 접목해 문화포교에 앞장서려는 노력과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이 있어 문화포교의 미래는 밝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곧 ‘포교’의 작은 씨앗이 되어 이제 조금씩 싹을 틔워가고 있다. ‘문화 포교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불교문화의 활성화를 모색해본다.

■ 사찰음식 대중화의 선구자 선재 스님

‘건강’이 현대인들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자, 사람들은 산사로 눈을 돌렸다. 맑은 물과 공기에 자극적인 오신채를 쓰지 않는 담백한 맛이 어우러진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사찰음식의 연구와 대중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해 온 사람이 바로 선재사찰음식연구원장 선재 스님이다. 스님은 ‘수행하는 스님들을 위해 음식을 연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수행’이라는 생각에서 사찰음식을 20여년간 연구해왔다. 1995년 불교TV ‘푸른 맛 푸른 요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찰음식을 선보인 이후 사찰음식은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처님께서는 ‘때에 맞는 음식을 먹으라. 제철 음식을 먹으라. 골고루 먹으라. 과식은 금하고 육식은 절제하라<사분율>’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그릇의 음식을 통해서도 인간의 삶과 자연의 이치를 헤아렸던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것이 바로 사찰음식인 셈이죠.”

이후 스님은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2000년)이라는 사찰요리책을 펴냈고, 몇 차례의 전시회도 열었다. 또한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을 열어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동국대 가정교육학과 대학원 겸임교수로 사찰음식의 의학적?철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선재 스님은 “요즘같이 인스턴트 음식이 남용되는 세상에 사찰음식을 알리고, 또 건강을 위해 많이 애용할 것을 권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사찰음식에 담긴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 음성공양 산사음악회 섭외 1순위 정율 스님

“산사음악회가 절정을 이루는 9~10월은 공양도 제 때 못할 정도로 바쁩니다. 하지만 제 노래를 기다리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납니다.”

찬불가로 불음을 전하는 ‘음성 포교사’ 정율 스님. 스님은 요즘 붐을 이루고 있는 산사음악회의 ‘섭외 1순위’로, 천안과 광주, 진주 등 전국의 산사에서 일반인들에게 찬불가의 장엄미를 전하고 있다. 또한 격주에 한 번씩 불교 TV에서 ‘오늘은 좋은 날’이라는 찬불가 교실을 진행하고 있으며, 보문사 승가대학과 대구 동명사 등에서도 불교음악 특강을 열고 있다. 찬불가를 접할 기회가 적은 일반인에게는 친숙함을, 매일 부르면서도 잘못 알고 있거나 가사에 담긴 뜻을 모르는 불자들에게 찬불가가 갖는 ‘참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최근 무리한 일정 탓에 몇 번씩 병원을 오가는 등 건강이 좋지 못하지만, 인터넷 홈페이지(http://jungyul.or.kr) 게시판에 올라오는 팬들의 격려글이 스님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산사음악회에서 처음 찬불가를 접하고 제 홈페이지에 ‘너무 좋았다’, ‘다시 듣고 싶다’는 글을 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렇듯 찬불가를 널리 알리는 것이 제게 주어진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16년 동안 음성포교에 매진해 온 정율 스님. 스님이 들려주는 노래라 일반인들의 마음을 적셔 줄 수 있는 것은 지난해 발표한 앨범의 제목 ‘노래로 하는 기도’처럼, 스님의 노래 역시 기도하며 부르는 노래, 부르는 대로 곧 기도가 되는 ‘노래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이 아닐까.


■ 경전 만화로 '사각지대' 타개 오거서 불경만화 기획연구팀

지난 8월 <만화로 보는 부모은중경>이라는, 사찰도 동자승도 등장하지 않는 조금은 특별한 ‘불경만화’를 펴낸 도서출판 오거서(대표 공세동). 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아직 ‘출판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어린이 불서 시장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의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에서 이름을 딴 이곳은 4년간 30여 권의 어린이 불경만화를 출판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첫 결과물이 오거서 불경만화 기획연구팀이 글과 구성을 맡은 <만화로 보는 부모은중경>이다.

지난해 우연히 어린이 법회에 참석했던 공세동 대표는 어린이들이 뜻도 모르는 천수경을 독경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이 불서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당장 ‘오거서 불경만화 기획연구팀’을 구성했다. 김경윤 소설가와 윤정선 구성작가가 스토리를 맡고, ‘봉이 김선달’의 작가 이만수 씨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함중하 씨 등 70년대를 풍미한 만화가들이 그림을 맡았다.

제작비는 일반 책의 2~3배가 들지만 수익성이 거의 없는 불교만화시장에 ‘어린이를 위한 제대로 된 불서를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 만으로 뛰어든 것은 무모하다시피 한 일이었다. 책 한 권을 구성하고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부지기수로 날을 샜고, 기획안만도 5~6번씩 새로 짜야했다. 그러나 첫 결과물이 나온 지금, 불경만화 연구팀의 노력에 비해 판매는 여전히 부진하다. 이대로는 ‘기본 제작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불경만화기획시리즈는 멈추지 않습니다. 어린이 불서 보급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


■ 8년 동안 찬불동요 창작 한길 좋은 벗 풍경소리

지난 8년의 세월동안 7번이나 짐을 싸고 풀었다. “어린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는 찬불동요를 만들겠다”는 원력을 이루어나가는 길은 그렇게 험난했다. 그리고 그 ‘험난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올 겨울에 선보일 17집 녹음 작업이 한창인 서울 조계사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좋은 벗 풍경소리’의 이종만(45), 정유탁(31), 권현수(30) 씨. 이들은 1994년, 찬불동요의 창작과 보급이라는 원력을 세우고 ‘좋은 벗 풍경소리’를 설립했다. 기존의 찬불동요를 정리하고, 새로운 곡을 만들고, 이를 음반과 악보집으로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찬불동요는 제대로 된 악보조차 없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용’ 수준이었습니다. 그만큼 찬불동요의 필요성조차 널리 인식되지 못하던 때였다. 때문에 찬불동요를 만들고 보급하는 일은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투쟁’이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풍경소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1천여 명의 회원이 힘을 실어주고 있고, 후원회원도 300명에 이른다. 1년에 3장 정기적으로 발매하는 찬불동요집과 지금껏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발행해 온 소식지도 이들의 자랑이다.

“우리에게 좋은 찬불동요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자님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준다면, 찬불동요는 한층 더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찬불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좋은 벗 풍경소리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 모두에게 작가?작곡 등 참여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두고 있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는 좋은 글과 곡을 앨범에 담는 것도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소리’가 되기 위해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동요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오선지와 씨름하는 이들에게서 잔잔한 법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 '동승' 해외 10개 영화제서 수상 주경중 영화감독

지난 4월 한국 영화계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달마야 놀자’ 이후 불교 소재 영화는 거의 흥행 참패를 면하지 못했는데 개봉 3일 만에 13만 5천 명의 전국 관객 동원, 60%를 육박하는 좌석 점유율이라는 믿기 어려운 성과를 올린 영화가 있었다. 제목은 ‘동승’. 더욱이 국내 개봉 이전부터 상하이 영화제 각본상, 시카고 영화제 관객상, 프랑스 아노네 영화제 관객상, 티뷰론 영화제 최우수 가족영화상 등 10여개의 해외 영화제 수상에 이어 20여개 영화제에 초청되는 진기록을 낳았다. 이런 영광의 한 가운데는 7년여 동안 고통스런 촬영과 시나리오 작업을 해 온 주경중 감독(44)이 있었다.

‘동승’의 흥행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기 어려웠는데 다음 작품 구상에 한창이었다. 제목은 ‘테일러 양복점’. 시나리오 작업중이라 내용 소개는 시기상조라고 한다. 또 11월에 열리는 제13회 인도국제영화제 아시아 파노라마 부분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준비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인도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이 된 주경중 감독은 한국외국어 대학교 인도어과를 졸업, 인도에 대해 조예가 깊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음 작품은 불교영화는 아니지만 주 감독의 머릿속엔 항상 불교 소재 시나리오가 가득하다. “시나리오는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발로 쓰는 거라는 생각에 직접 산사로 들어가 한 달을 살았지요. 동고동락을 했던 원주 구룡사 스님들이 그렇게 족구를 잘할 줄 몰랐어요. 스님들이 추구하고 갈구하는 부처는 우리가 삶 속에서 추구하는 일상의 것들과 다르지 않았지요. 그동안 스님들에게 귀동냥으로 얻은 지식으로 3~4년 후 다시 한번 불교 영화에 도전할 겁니다. 그 땐 정말 잘 만들어 볼게요.”


■ 서울시서 전문예술단체 선정 강형진 니르바나 실내악단장

올 가을에는 유난히 산사 음악회가 많다. 그래서일까. 니르바나 실내악단의 연주가 산사에 자주 울려 퍼진다. 하지만 지난 99년 2월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창단연주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생소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서양의 현악기에 동양의 불교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열악한 불교문화계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갈지 불안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국내 최정상인 KBS교향악단의 잘나가던 단원이라는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불교와 서양 음악을 접목시켜 보겠다는 뚝심 하나로 버텨온 강형진 단장(49)이 아니면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강 단장은 지난해 행원문화상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올해로 창립 5년째를 맞는 니르바나불교실내악단은 지난 2월 불교연주단체로는 처음으로 서울시 지정 전문예술단체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강 단장은 “처음 창단했을 때의 초발심으로 돌아가 실내악이 전무한 불교음악계에 불교 사상과 서양음악의 만남을 열어가는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며 불음 포교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창단 후부터 월 2회 정도 이상씩 꾸준한 연주회를 열고 있는 강 단장은 지난 10월 11일에도 동국대 예술극장에서 소아암 환자돕기 자선 연주회를 가졌다. 또 11월 4일에는 경기도 안산시 불교음악제에 초청연주를 할 예정이다.

연주 활동 틈틈이 1년에 한번씩 해인사 백련암에 가서 7일 동안 매일 3000배를 올리기도 하는 강 단장은 “재정 사정상 단원들 대부분이 객원으로 연주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포교 연주를 위해서 상임 단원들로 구성해 한달에 최소한 10회 이상의 연주 기회를 갖는데 큰 꿈”이라고 말한다.


■ '넋의 소리' 등 창작 불교발레 개척 손재현 동국대 체육교육과 무용전공 교수

전통 발레에 불교문화를 접목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포교 무용가 손재현 교수(43). 99년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종)의 주조 과정에 녹아 있는 불심을 주제로 한 불교무용극 ‘넋의 소리’를 시작으로 ‘사천왕’, ‘연화’까지 해마다 창작 불교발레를 한편씩 무대에 올리고 있다.

특히 손재현 무용단 창단 공연 작품이었던 ‘넋의 소리’는 신체언어인 서양 발레에 대사를 삽입한 교계 최초의 무용극이었다. 물론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실험이었다. ‘넋의 소리’는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을 만들어 낸 신라인들의 불심과 장인 정신, 그 속에 서려 있는 한과 넋 등을 현대 창작 발레로 표현했다.

“대학 시절 스승이 춤을 통해 제자들에게 선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교는 목사님의 설교나 인쇄 매체 등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춤의 선교 효과가 크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무용을 통해 불교를 일반인들에게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이런 손 교수의 원력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이어졌다. 2000년에는 이스라엘과 네델란드에서 춤사위를 흩날렸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단일 행사로는 세계 최대 무용페스티발인 ‘카미엘 국제 댄스페스티발’에 참가해 약 20만명의 관객 앞에서 총 5회에 걸쳐 공연하기도 했다. 또 올해 8월에는 벨기에 나무르에서 열린 ‘잠비스 국제민속축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한편 손 교수는 10월 23ㆍ24일 양일간 서울 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대만 카오슝시 발레단과 함께 ‘연화(蓮花)’를 공연한다.


■ 화엄사상 녹인 의상전 '눈길' 이기향 한성대 의생활학부 교수

‘옷들이 전시회에서 움직인다.’ 얼핏 들으면 SF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얘기지만 지난 9월 5일부터 16일까지 광화문 갤러리에서 열렸던 이기향 교수(48)의 의상전시회 제목이다.

모든 주제는 ‘화(華)’다. <화엄경>에서 따온 것이다.
<법화경>을 주제로 한 의상 전시 이후 4년만에 완성한 30여점의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해 무용과 음악을 곁들여 공연을 했다.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일종의 의상극 형식이다.

이 교수는 “어릴 때부터 가졌던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불교를 접하면서 해소가 되었다”며 “화엄이 가진 화합의 의미를 살려 고통 받는 여성들이 그 고통에서 헤어나길 바란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렇듯 이 교수의 의상 전시회는 항상 불교와 관계가 있다. 2000년에는 ‘법화경’ 을 테마로 한 의상 작품 ‘영취산의 환희’로 해외예술계까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미국의 고급패션 전문잡지 <어너먼트(Ornament)>는 2000년 봄호에 ‘이기향, 그 불교적 감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는 보기 드물게 동양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깊이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의 모든 과정을 동영상과 책으로 묶었습니다. 해외 패션 시장에 의상을 통해 한국의 불교 정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서지요. 당분간은 전시 일정이 없지만 계속해서 부처님 말씀을 패션에 반영하는 작업에 몰두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