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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로 어수선하던 대웅전 앞마당이 오늘만큼은 각종 장엄으로 한껏 멋을 냈다. 대웅전 앞마당은 이미 영산재에 동참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 천 여명의 신도들로 가득하다. 재에 참가할 여러 부처님과 이를 호위하는 신중이 그려진 거대한 괘불과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적은 당번, 부처님께 바치는 오색 지화(紙花), 죽은 자가 쓸 저승 노잣돈인 대형 지전(紙錢)으로 경내는 이미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야외법회를 의미하던 야단법석이 소란스런 대중모임으로 뜻이 바뀐 것은 과거 영산재와 같은 불교의식이 얼마나 대중적인 행사였는지를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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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영혼에게 간단한 법식(法食)을 베풀어 대접하는 대령(對靈)과 불단에 나가 법문을 듣기 전에 영혼이 세속에서 탐진치(貪瞋癡) 삼독으로 더럽혀진 업장을 깨끗이 씻는 관욕(灌浴)이 이어진다. 병풍으로 가린 관욕소 안에서 영혼을 씻기는 동안, 병풍 밖에서는 진언에 따라 결수(結手, 손가락을 여러 모양으로 구부려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형식)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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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영산재에만 있는 식당작법(食堂作法). 재공양의 다른 절차와 달리 철저한 수행을 통해 대중의 공양에 보답하는 마음과 대중구제의 원을 담은 ‘수행의례’다. 공양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시자(施者, 공양을 베푸는 자)·수자(受者, 공양을 받는 자)·시물(施物, 공양물)의 공덕과 불·법·승을 생각하고, 배고픔에 고통받는 아귀중생에까지 공양을 베풀어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다. 식당작법은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의 사물(四物)과 범패, 홋소리, 짓소리, 타주춤 등의 작법이 어우러져, 영산재에서 가장 화려한 의식으로 꼽힌다.
오후의식은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의 법문으로 시작됐다. 월운스님은 “종교에 의식이 없는 것은 군인에게 구령이 없는 것과 같다”며 “오늘 의식을 준비해 온 스님들께 박수를 부탁드린다”는 말로 영산재 재현의 축하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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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영가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 법식을 베풀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시식(施食)과 의식에 사용된 각종 장엄구와 영가 위패를 사르는 의식으로 영산재는 막을 내렸다.
오늘 영산재는 하루 동안 계속된 의식만큼이나 영산재를 둘러싼 조계종과 태고종의 관계에 관심이 집중됐다. 조-태 갈등의 골을 영산재가 메우느냐, 더 깊이 패느냐하는 언론의 상반된 예측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향후 문제에 대한 예측은 차치하고, 오늘의 행사만을 본다면 갈등의 골을 메우는 모습이다. 동희스님이 바깥소리 가운데 회심곡을 부를 때 태고종 구해스님이 북을 치며, 조계종과 태고종 스님이 영산재로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해스님은 “조계종 스님들이지만, 같은 스승에게서 영산재를 사사한 제자들이다”라며 “종단간의 문제보다는 잊혀져가는 불교 문화을 전승하고 보존하겠다는 움직임을 축하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시작하며 조계종 문화부장 탁연스님이 “지금까지 영산재를 잘 지켜주신 태고종과 스님들께 감사하다”고 건낸 인사말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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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재를 지켜 본 신도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이은화(62) 보살은 “불자로서 불교의식에도 관심이 많아, 안산에서 영산재를 보러왔다”며 “오늘 행사가 여법하게 진행돼 기쁘지만, 의식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일반 신도들은 이해가 어려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