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갓슴니다 아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깨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떨치고 갓슴니다”(‘님의 침묵’ 1926년 회동서관 발행 초판본)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만해 스님의 시 ‘님의 침묵’. 우리 선조들은 이 시를 어떻게 읽었을까?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의 유일한 시집인 <님의 침묵> 초판본을 비롯, 130여 종의 판본을 선보이는 ‘<님의 침묵> 판본 특별기획전’이 10월 29일까지 경기도 광주 만해기념관(관장 전보삼)에서 열린다. 1995년 현대불교신문사와 책방 여시아문의 창간ㆍ개점 1주년 기념 ‘만해 스님 <님의 침묵> 판본전’에서 초간본을 비롯한 82종이 선보인 이래 <님의 침묵>의 판본이 대규모로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초판본은 맞춤법통일안(1934년)이 작성되기 전인 1926년 5월 20일 회동서관이 발간한 것으로, 만해 스님 특유의 조어와 방언이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시어를 말의 장단과 고저에 따라 띄어쓰기한 점이 눈에 띈다. 전 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초판본 첫 페이지에는 처음 이 책을 소장했던 이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우리나라 지도와 무궁화 꽃이 새겨져 있다. 당시, 일제에 의해 금서로 묶여 제대로 배포되지 못했던 이 시집이 일반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읽혔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광복 후 출판시장이 정비되면서 한성도서 주식회사에서 펴낸 <님의 침묵>(1950년 4월)에는 전시 판본 중 유일하게 만해 스님의 사진이 담겨 있다. 60~70년대에는 다양한 판본이 선보이게 되는데, 판본마다 다른 시어를 정리하기 위해 민족사에서 펴낸 정본판(1980년 12월)은 시의 원전비평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후 문고본 발간이 활발했던 70년대와 시낭송 테이프와 시가 적힌 팬시용품들이 등장하는 80~9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대표적인 판본을 정리한 이번 전시에서는 국어표기법의 변천은 물론, 책 디자인의 흐름과 제책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님의 침묵>은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ㆍ발간됐다. 외국 판본으로는 미국 하와이대 판본(1974년)과 ‘님’을 단순하게 ‘Love’ 또는 ‘Lover’로 번역했던 다른 외국어판과 달리 ‘님(Nim)’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님’에 대한 5쪽 분량의 주석을 단 프랑스판(Le Silence De Nim, 1996년)도 관심을 모은다.
이 밖에도 전시회에서는 만해 스님이 머물렀던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의 산실 오세암에 이르는 30리 풍광을 담은 ‘무강오세암도(无疆五歲庵圖)’(야송 이원자 화백)와 20편의 시와 그림을 엮은 시화(詩畵)도 볼 수 있다.
20여 년 동안 청계천의 헌책방과 인사동의 고서점을 뒤지며 판본을 수집해 온 전 관장은 “조지훈 시인은 ‘<님의 침묵> 한권 만으로도 만해 스님의 시는 현대시의 고전이 되었다’고 평가했다”며 “80여년의 세월동안 시공을 초월해 끊이지 않고 읽히는 만해 스님의 시는 문학적인 향기와 사상적인 깊이를 두루 포괄하는 위대한 유산이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