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자실. 태풍 ‘매미’로 인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심경이 바로 이럴 것이다. 위로의 말을 고르는 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달 말까지 호우가 계속된다고 하니 상처를 돌보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만신창이가 된 남해안 양식장에서는 낚시꾼들이 떼로 몰려 양식 물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과연 저 사람들이 우리와 한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저 모습 또한 타인의 아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경기 침체와 실업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버려도 좋을 변명거리일 수는 없다.
베풀 것이 없다면 측은지심이라도 가져야 한다. ‘소외와 절망’이라는 제2의 태풍을 안겨 줘서는 안 된다. 그것에 의한 상처는 영원히 치유불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최고 실천 덕목은 육바라밀이다. 그중 ‘보시’는 으뜸이다. 하지만 자비행이 그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보시와 지계, 인욕과 정진은 자비행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지혜와 계합할 때 깨달음의 꽃이 피는 것이다. 불자라면 마땅히 일거수일투족이 자비와 지혜에 놓여야 한다.
거듭되는 재난에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수재민들에게 ‘소외와 절망’이라는 제2의 태풍을 맞게 해서는 안 된다. 따뜻한 마음을 모으는 것, 연대의 방파제를 세우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