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이루는 길이 평상심과 다름 아니듯 한지공예라는 것도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겠다 싶어 생활공예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 들어간 문양만큼은 연꽃과 불보살 등 불교적인 것들로 새겨 넣었습니다.”
부산 국제신문사 4층 제 1전시실에서 9월 23일부터 30일까지 제 1회 ‘한지공예전’을 여는 공예가 법연 스님은 제작 의도를 이렇게 내비쳤다. 상(床), 장(欌), 함(函), 등(燈), 경(鏡) 등 5개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12각호족상’, ‘팔각상’, ‘12서랍장’, ‘반짓고리’, ‘예단함’, ‘경대’, ‘격자등’, ‘불감등’ 등 70여 작품이 선보인다.
스님은 이번 작품에 주로 색을 탈색해 은은한 느낌이 드는 탈색기법을 사용했다. 화려한 색상이 많이 들어가는 오색전지기법이 실용공예와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스님의 작품을 보면 색상이 다양하지 않고 대부분 고동색(나무 색깔)이나 검은색과 같이 단조롭다. 특히 고동색은 검은색을 묻힌 한지에 다시 락스로 탈색해서 만들어 냈다. 이때 색상의 명암은 락스의 양으로 조절해서 같은 고동색이라도 다양한 질감을 표현했다. 또 무엇보다 실용성이 중요한 생활공예품들이다보니 서랍장과 같이 짐을 넣어두는 것에는 ‘하드지’와 같은 단단한 종이를 기본틀로 사용했다. 이외에도 교잣상에는 나무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한지에 주름을 입히기도 했다. 또 거실이나 안방에서 사용하면 좋을듯 싶은 스텐드인 ‘바람꽃등’에는 알루미늄철사를 한지로 싸서 긴대를 만들었다.
이번 작품중 가장 주목이 가는 작품은 ‘불감등’. 검은 색 바탕위에 위엄있게 서 있는 금색의 관세음보살이 마치 한편의 벽화를 연상케 하지만 가정용 스텐드에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이다. 법연 스님이 한지에 조각도로 한땀한땀 파냈다.
스님은 “나무도 아닌 종이를 얇게 조각도로 파는 것은 작업이 끝난뒤에 한동안 팔을 못 사용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며 “새기고 붙이고 탈색하는 등 여러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예술도 구도여정과 같이 꾸준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그간의 힘들었던 과정을 토로했다. 스님은 내년 2월 한지공예 회원전도 열 계획이다.(051)500-5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