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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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스님들 필사통해 불서유통
고려시대는 <고려대장경>과 <직지심경>의 발행을 이유로 흔히 목판인쇄와 활판인쇄의 전성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숙명여대 정병삼 교수는 9월 4일 미디어·역사·문명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고려시대 스님들은 필사를 통해 불서를 유통했으며, 당시 사경은 공덕신앙과 회화 역량이 총 결집된 우수한 예술품”이라고 발표했다.

사경(寫經)은 불교 경전의 내용을 붓으로 베껴 쓰는 일이다. 처음에는 경전의 내용을 배우거나 널리 전파·보존하기 위한 현실적인 목적에서 시작됐던 사경이, 이후에는 사경하는 행위의 공덕을 중요시하게 된다. 정 교수는 “고려시대에는 공덕을 쌓아 수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사경 공양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며 “경전의 내용을 압축해 그림으로 설명한 변상도(變相圖)를 그려 넣은 사경은 불교 공덕신앙과 제지, 염료 기술의 발달, 불교회화 역량을 한데 모은 미려함과 호화로운 장식이 절정에 이른 예술품”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발표를 통해 “가장 오래된 사경은 <대보적경>(1006년·목종 모후 황보씨 발원)으로 왕실의 발원 사경은 국왕 발원 사경과 상류층의 사경 공양으로 이어졌다”며 1055년 금오위대장군 김융범의 <반야경> 사경과 숙종 대에 궁중에 설치된 ‘사경원(寫經院)’을 예로 들었다.

정 교수에 따르면 고려의 활발한 사경 활동은 원과의 교류로 이어져, 원이 고려에 사경 전문 승려를 요청해, 15년 사이에 2백여 명의 사경승이 원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려에서 제작한 사경을 재화와 바꿔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사경 공양 외에 고려시대에는 균여 스님의 <법계도원통기>를 국현 스님이 필사, 법진 스님이 다시 필사, 이어 인원·일당·천기 스님이 필사해 불서를 전한 것처럼, 소규모의 서적 전승은 여전히 필사가 유효한 통로였다”고 밝혔다.
오유진 기자 | e_exist@buddhapia.com
2003-09-13 오전 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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