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긍선(1767~1852)은 임제선을 중심으로 조선 선문의 정체성을 확립, 체질강화 작업을 착실히 계승한 인물이며, 초의 의순(1786~1866)은 고요한 혼자만의 깨침만을 구하는 체제로서의 선문에 무관심한 인물이었다.”
불교학연구회 제19차 학술발표회에서 ‘조선후기의 임제선 연구: 선(禪)논쟁에 내포된 원형지향성’에서 박재현(경희대 강사) 씨는 이같이 주장했다. 이는 지금까지 ‘백파=임제선 지상주의자’, ‘초의=합리주의자·객관주의자’라는 일반적인 평가와 상충되는 주장이다. 박 씨는 “고려불교에 비해 조선불교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조선 후기 선 연구에서 편향된 시각이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백파의 <수선결사문(修禪結社文)>을 인용해 “백파는 결사를 통해 청정하고 투철한 계율 중심이 승가를 표방하면서 조사선의 이상을 구현하려 했다”며 “백파의 사상사적 정향과 수선결사의 성격을 통해 짐작해 볼 때, 백파의 선 이론이 임제선만을 취하고 여래선과 의리선을 버리자는 것으로 판단하기는 좀 성급한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백파는 선불교의 정체성 확립 방안의 하나로 삼종선을 제기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덧붙였다.
백파의 삼종선은 조사선을 가장 수승한 것으로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의리선이나 여래선과는 구분되는 제3의 선이 아니라, 그 둘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포섭한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 씨는 ‘백파가 임제선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종 5가를 분류했으며, 조사선만을 격외선으로 봐야한다’는 초의의 일관된 주장은 당시 대세로 자리잡은 임제선을 중심으로 조선 선문의 정체성을 확립해 부흥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백파의 의중을 읽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초의는 당시 불교계가 당면하고 있던 현실적 과제들을 소홀히 한 채, 그 정체성조차 불분명한 고덕이라는 원형에 목을 메는 일종의 복고주의자였다”고 말하며 초의의 합리성은 선문 체제에 대한 무관심의 발현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