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회 동국대 교수·윤리학
모든 집단은 자신에게 알맞은 문화를 만든다. 집단은 일차적으로 문화를 생산하지만 결코 창조적인 생산 활동은 아니다. 문화는 몸에 맞는 옷과 같아서 타문화를 수용·소비하면서 집단의 규모나 특징에 맞게 수정되고, 맞지 않으면 소멸한다. 그것이 문화 재생산이다.
우리 군의 짬밥문화는 반세기 이상 청년 남성 집단의 대표적인 문화가 되었다. 사전에도 없는 ‘짬밥’이라는 말은 밥찌꺼기라는 말의 변형으로 초기에는 어려운 군대생활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관록이나 경륜에 기초한 위계·서열을 표현하는 말로 군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용된다.
이번에 육군은 매우 파격적인 병영내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다양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금지항목들을 나열하고 있다. 특히 사병간의 명령, 지시, 간섭 금지가 주목할 만하다. 이제 고참은 신참에게 구타나 얼차려는 물론이고, 식기 닦기나 심부름도 시키지 못하게 됐다. 실제로 병사의 계급은 상명하복의 위계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복무기간과 역할을 나타내는 기준이기 때문에, 이등병과 병장은 수평적 동반자 관계이다. 육군의 ‘사고예방 종합대책’은 이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있다.
세상이 변했고, 사람 또한 많이 변했다. 오늘날 군인은 장교, 사병 할 것 없이 신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지구촌, 세계화 그리고 현대의 기술이 일구어 낸 다원적인 문화에 익숙해 있다.
일부에서는 ‘군대는 유희집단도 아니고, 보이스카우트도 아니다. 군대는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책임지는 전위집단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기강과 규율을 해체하면 어떻게 훈련을 하고, 전쟁을 하겠느냐’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나 바로 1년전 서해교전에서 목숨을 바쳐 용감하게 싸운 우리 해군 장병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전투에 임했다. 우리 신세대 장병들은 우리 퇴역들의 염려와는 달리, 충성심, 인내심, 단결력에서 추호의 빈틈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우려가 오히려 야만의 군사문화에 익숙한 우리 퇴역들이 종종 범하는 과장된 짬밥문화일지도 모른다. 이번 행동강령은 ‘짬밥문화를 문명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명화(be civilized)란 ‘시민이 되게하다’라는 말이다. 군인의 역할과 임무의 특성상 군대는 전체주의적 통합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문화는 거의 모든 남성이 공유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매우 큰 것 같지만, 우리 사회에서 군대는 분명 소수문화집단이다. 이런 소수집단의 병영문화를 시민사회의 문화에 개방함으로써, 병영내 인권과 평등을 신장하고 군사문화를 건강한 시민문화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지휘관들은 군기감찰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짬밥문화의 자기재생산 권리를 박탈하는 이번 조치가 지나친 국가개입으로 다시금 전체주의로 되어서는 안된다. 민족, 역사, 언어, 문화에 있어서 강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유교문화에 토대한 우리 사회에서 제도의 지나친 개입은 또 다른 짬밥문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강령을 악용하여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로 흘러 전투훈련에서 필수적인 인간애, 즉 전우애를 버리고 불관용을 저지르거나, 상대주의로 무장하고 “소대장, 혹은 내무반장, 당신이 먼저 해봐라!”라고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불복종하는 군기문란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