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 생활 > 복지
나눔의 집의 두 일본인, 마리오와 코지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코지(왼쪽)와 마리오(오른쪽). 사진=박재완 기자
한국, 그리고 나눔의집과의 인연
인연(因緣), 사람이나 사물이 서로 맺어지는 관계.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안식처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는 귀한 인연이라는 말이 제대로 어울릴법한 두 사람이 있다. 한국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일본인 ‘마리오와 코지’는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인 미래를 위해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일을 자청해 나눔의집에서 봉사하고 있다.

“마리오라고 불러주세요”
나눔의집 식구들 사이에서 야지마 쯔카사(32) 씨는 본명이 아닌 ‘마리오’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예전에 유행했던 비디오게임 슈퍼마리오의 주인공을 닮은데다 두 마리오 모두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이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그는 나눔의집에서 슈퍼마리오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해내고 있다. 올 1월부터 나눔의집 내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일본방문객 통역, 일본 시민단체와의 연계활동, 수요집회 등 나눔의집 할머니들의 활동과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까지 일인 다(多)역을 맡고 있다.

와세다대 재학시절, 그는 인도사를 전공하면서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분쟁 등 국가간 분쟁이나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그에게 한국 유학생 친구들은 일본이 청산해야할 과거를 말해줬다. 졸업 후 2년 동안 아사히신문사의 사진기자로 재직하기도 했던 그는, 꾸준히 한국과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키워오다 나눔의집 연구원으로 한국을 찾게 됐다.

“나눔의집은 훌륭한 견학 교육현장입니다. 단순히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증언의 현장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의 인권, 평화의 메시지 등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산교육의 장소입니다. 저는 나눔의집과 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일본사회에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일본어보다 한국어가 더 익숙하다는 코지(29)씨는 한국에 온지 3년째 되던 해, 평소 좋아하던 일본인 포토 저널리스트의 통역 차 나눔의집을 처음 방문하게 됐다. 이후 1년이 넘게 “일주일의 반 이상 살다시피” 나눔의집에서 번역, 통역 일을 도와왔다.

필요한 자금을 현지에서 조달해가며 세계 여행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호주로 향한다. 호주 멜버른에서 10개월을 체류하는 동안 야지마씨처럼 그도 주변 한국인 친구들을 통해 한ㆍ일 양국의 역사를 처음 접하게 됐다. 한국인 친구가 열을 내가며 일본을 비판할 때 아무것도 모른 채 대꾸할 수 없는 게 화가 나 역사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았던 역사를 스스로 배워가다, 98년 한국에 왔다.

코지씨는 나눔의집 할머니들을 ‘특별하게’ 대해 본적이 한번도 없단다. 위안부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할머니들을 대하기란 같은 한국 사람에게조차 조심스러운데 그는 “할머니들이 마냥 편안하고 할머니들이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좋아 나눔의집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나눔의집에서 하는 일들이 ‘자원봉사’라고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다며 쑥스러워 했다.

“이곳 할머니들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병상에 계신 친할머니께 소홀했던 것, 부모님께 잘 하지 못한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됐죠. 지난 6월 친할머니 상으로 일본에 잠시 돌아갔을 때 태어나서 처음 부모님의 어깨를 주물러 봤습니다.”

나눔의집을 찾게 된 배경이나 계기가 다른 그들이지만 “할머니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이라고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은다. 최근 나눔의집 할머니들을 포함한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들의 국적포기 문제로 떠들썩한 것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두 사람은 “한국정부의 관심과 한국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리오가 본 코지, 코지가 본 마리오
코지씨는 야지마씨를 자신의 사진 스승으로, 야지마씨는 코지씨를 한국어 스승으로 부른다. 야지마씨는 코지씨를 “통ㆍ번역에 실력 있는 나의 한국어 선생님”이라며 “나눔의집에 오랫동안 꾸준히 방문해 봉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코지씨는 사진에 관심 있는 자신에게 “사진기자 출신인 야지마씨는 훌륭한 선생님”이라 부르며 “위안부 문제 뿐 아니라 갈등해소나 평화 등에 대해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국이라는 가깝고도 낯선 땅에서 나눔의집 사람들과 서로를 인연 맺게 된 야지마씨와 코지씨는 “언제까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연이 닿는 데까지, 할머니가 한분이라도 살아계시는 날까지 나눔의집과 함께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한상희 기자 | hansang@buddhapia.com
2003-08-25 오전 8:59: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