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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8만4천 단청문양을 완성한 김윤오 거사(51세). “부처님께서 단청문양을 통해 수행하라고 해서 한 일일 뿐”이라고 말하는 김 거사는 8월 13일 강원도 문막읍 부론면 거돈사지옆 손곡리 폐교의 교실 한 칸에서 창작한 단청문양 도안을 채색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김 거사의 작업장에 쌓여있는 8만4천 단청문양 도안은 금머리초 3만개, 금문양 5만개, 지장보살, 학, 천수천안, 봉황, 귀면, 천안 등 창작문양 도안 4천개이다.
김 거사는 “단지 불교단청문양에 관심 갖는 후학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작업한 내용을 모두 불교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부처님 전에 회향하겠다”고 밝혔다.
김 거사는 18세 되던 1962년 친척뻘 되는 한석성 선생이 단청 분야의 권위자라는 말을 듣고, 제자로 어렵게 들어간 후 문하생들의 허드렛일을 몇 년간 도맡았다. 8년간 어깨너머로 단청작업을 배워나가는 고된 훈련 끝에 1979년 문화재수리기술자(단청) 면허를 땄다.
이후 회사에 단청기술자로 취직하여 몇 년간 순탄한 삶이 펼쳐졌다. 색이 바랜 단청 문양을 복원하거나 기존에 있는 몇 가지의 단청 문양을 그려 넣는 것은 기술자로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기술을 인정받은 그는 백담사, 오세암, 월정사, 석굴암, 구룡사, 송광사, 마곡사, 해운정사, 망월사, 천마총, 무열왕릉, 김유신사당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김 거사는 12년 전인 1991년 어느 날 마음 한 켠에 간직했던 단청문양 창작 열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밥상에 앉아 하루 종일 작업에 매달렸다.
급기야 7년 8개월 전부터는 강원도 문막의 한 농가의 창고작업장을 구해 집에서도 나왔다. 김 거사가 생업을 포기하다보니 가족들이 10평 지하셋방을 전전하고, 부인 임영숙씨(47)와 아들 딸을 고생시킨 것은 못내 한으로 남았다. 12년간 씻지도 않고, 밥도 거르면서 단청 문양 창작에만 열중하다보니 김 거사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영양실조로 몸무게가 45㎏밖에 안되고, 앞 이빨 7개도 빠졌다.
8만 4천 단청문양 도안의 완성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송봉(충주 지장정사 주지) 택봉(서천 정토사 주지)스님이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거사의 25년 단청 문하생인 혜인스님(원주 지장정사 주지)은 “이 시대의 단청장인들 모두가 단청문양(머리초). 금(비단금) 문양에 대하여 뚜렷하게 설명하시는 분이 없고, 20여가지 단청문양을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창작문양을 완성한 것이 없는 현실”이라며 “좋은 인연을 만나 도록을 펴내고, 전시관을 건립해 단청문양을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김 거사는 수유리 삼성암 주지였던 동원스님-한석성 선생으로 이어지는 단청계맥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