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불교가 한자리에서 대화의 주제로 만났다. 베트남에서 불교도로 태어나 미국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트린 주안 투안과 프랑스에서 태어나 세포 유전학 분야의 과학자로 일하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티베트 승려가 된 마티유 리카르. 이 책의 대담자로 나오는 두 저자는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불교의 세계관에 비추어 보면서, 이 두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현대 물리학의 다양한 개념이 논의된다.
두 사람은 우주 복사와 빅뱅, 우주의 기원, 우주 팽창, 우주의 진화, 우주의 모습, 원자론, 푸코진자, 마흐의 원리, 괴델의 정리, 초끈이론,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 비선형성, 창발, 인공지능, 환원주의를 이야기한다. 이 대담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우주론과 불교의 세계관이 서로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담의 목적은 마티유가 밝힌 것처럼, 주관적 경험이 갖는 중요한 역할을 고려하는 삶의 개념에 과학의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음미하는 것이다. 즉,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사물이 보이는 방식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물질의 세계와 정신세계는 결국 서로 확연하게 나누어질 수 없으며, 두 분야의 연관성과 서로에 대한 이해만이 궁극적인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불교와 과학을 주제로 한 이 대화를 통해 과학은 불교가 관념적이며 비실재적이라는 오해를 풀었으며, 불교는 과학이 직면한 모순들과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과학은 세계를 보는 눈을 우리에게 제공하지만, 피상적인 방법으로 밖에 파악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불교는 이러한 과학의 기본 구조에 의거해 우리에게 해탈의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불교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이며, 공(空)이라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그릇된 집착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재론적 고통을 극복하고자 한다는게 마티유의 설명이다.
옮김이인 이용철 교수(한국방송대 불문과)는“상대성과 전체성을 강조하는 불교적 사유가 과학적 사유의 폭을 넒힐 수 있다면, 과학은 인간에게 더욱 유용한 방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불교에서는 우주의 참 모습을 제대로 아는 지혜, 우주의 참모습에 일치하는 지혜를‘여실지(如實知)’라 한다. 불교가 우주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고 과학이 세계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여실지’에 접근하려는 그 둘의 세계관이 일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불교든 과학이든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는 것이 바로 이 두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손바닥 안의 우주
마티유 리카르ㆍ트린 주안 투안 지음/이용철 옮김
샘터
1만8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