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避暑)’. 더위를 이기는 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배움의 열기로 더위마저 잊고 사는 차인(茶人)들이 있다. 차 예절과 다도의 정신을 알고 차를 마실 때 진정한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차 고전 강좌가 열리는 서울 법연사와 다도예절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부천 석왕사 현장을 각각 찾아가봤다.
# 1. 초심자들의 다도 입문기- 부천 석왕사 다도예절강좌
“차는 색과 향과 맛을 느끼며 세 번에 나누어 마십니다.”
8월 7일 오전 10시, 다도예절강좌가 열리고 있는 부천 석왕사 전통찻집 다인. 습도가 높아 땀이 저절로 흐르는 바깥과는 달리 찻집 안은 서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다구를 앞에 놓고 나란히 앉은 5명의 수강생들은 다도 사범 오숙 씨의 설명에 따라 차를 따르고 조용히 차를 음미한다.
지난 6월부터 3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는 이 강좌의 수강생은 모두 8명. 주부들인 탓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차를 제대로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함께 수강신청을 했다. 덕분에 요즘 수강생들은 ‘다도삼매경’에 빠져 있는 중이다.
“차를 마신지는 10년 정도 됐지만 정식으로 다도를 배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김한순 씨는 “스님이나 도반들이 차를 권할 때 어떻게 마셔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강의를 듣고 차 마시는 법을 배운 것은 물론 차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수강생 박경애 씨는 “차를 마실 때는 한 순간 한 순간 집중해야 하므로 번뇌가 없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다”며 직접 낸 차를 한 잔 권한다. 석왕사에서 처음으로 다도강좌를 연 사범 오숙 씨는 “여름에는 덥고 목마르다고 빙과류나 탄산음료 등 찬 음식에 손이 가기 쉬운데, 뜨거운 차를 마심으로써 정신을 맑게 하고 식중독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도를 배워서 좋은 점’을 묻는 질문에 수강생들은 한결같이 ‘그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다구를 꺼내 차를 우리고, 가족과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든다. 그만큼 차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지런히 놓여진 다구 위에 다포를 덮고 자리를 정리하는 수강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차 마시는 과정이 수행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간다’는 이들의 말에서 차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 2. 다서(茶書) 읽으며 진정한 차인으로 거듭난다- 차 고전강좌
“차를 심어서 생산하는 땅은 반드시 햇볕이 드는 언덕이어야 하며, 차밭은 반드시 그늘져야 한다. 대개 돌의 성질이 차가워 그 이파리가 억눌려 메마르기 때문에 그 맛이 거칠고 얕게 된다.”(<대관다론> ‘지산’ 중)
중국 북송의 휘종 황제가 쓴 <대관다론(大觀茶論)>을 읽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곳은 서울 법연사 2층 서울불교전문강당. 30여 명의 수강생들이 강의를 맡은 수필가이자 차고전연구가인 유건집 씨를 따라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 읽으며 뜻을 새기고 있다.
서울 종로구 화동의 전통찻집 다담선을 운영하는 김미려 씨(한국차인연합회 다예랑 지회장)의 제의로 시작된 이 강좌는 처음 10여 명의 지인들로 시작해 지금은 30여 명으로 수강생이 늘었다. 수강생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강좌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강의를 듣는 이들 대부분이 다른 단체나 문화센터, 사찰 등에서 다도 강좌를 하고 있는 사범이거나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대학원에서 다도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다. 때문에 강좌는 단순한 ‘주입식’이 아니라 개방적인 토론으로 곧잘 이어지곤 한다.
강좌의 또 다른 특징은 ‘개강일’은 있지만 ‘종강일’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월부터 진행된 <다부> 강독에 이어 지금의 <대관다론>, 이후 <동다송>과 <다신전>, <다경> 등 현존하는 다서들을 3개월씩 강독하는 일정이 이어진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 강좌를 열겠다’는 것이 강의를 하는 이나 듣는 이 공통의 서원이기 때문이다.
경희대 대학원에서 생활예절다도를 전공하고 있는 장정화 씨는 “대학원에서도 차 고전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곳에서 한자는 물론 차에 관련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매주 수요일 남양주 수종사에서 다도를 가르키고 있는 윤부용 씨는 “단순히 원전 강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한 고전들을 함께 찾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다”며 “오는 9월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열리는 <다부> 강좌에는 차에 관심 있는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와서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