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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뱅크 운영해 도시락 배달 '나누는 기쁨'
한 끼 밥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1997년 월운 스님을 이사장으로, 경기 북부 지역 사찰 70여 곳의 재가불자들이 모여 발족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좋은 모임)’. 김장나누기와 주택수리, 무료진료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펼쳐온 좋은 모임은 99년부터 푸드뱅크를 운영하며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100여 가구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지난 7월 30일, 이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09:00
경기도 의정부역 앞 상가에 자리 잡은 ‘좋은 모임’ 사무실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사람은 김남숙(54) 팀장. 전날 수원까지 기증물품을 받으러 다녀온 탓에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하루 고생한 덕분에 사무실에는 비누며 세재, 칫솔, 즉석국 등의 생활용품들이 가득 쌓여있다. 주방을 정리하면서 머리로는 물품들을 어디에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김 팀장은 척척 계산해 낸다.
7년 전, 자영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김 팀장은 보증 한 번 잘못 선 덕분에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당시 학생이던 아이들과 말 그대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을 때, 그는 좋은 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당장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할 시기에 무슨 자원봉사냐’며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물론, 김 팀장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사장 정암 스님이 “사람이 돈을 쫓아가면 돈은 저만큼 멀리 도망간다”며 “당분간 마음을 비우고 좋은 모임 활동을 해 보라”고 권했다.

주위의 손가락질과 ‘푸드뱅크가 무슨 은행이냐?’, ‘당신이 먹으려고 가져가는 것 아니냐’하는 물품 기탁자들의 오해를 묵묵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일을 이해해주는 자녀들과 틈틈이 읽고 마음에 새긴 부처님 말씀 덕분이었다. “내 복을 쌓기 위해서 혹은 남을 돕는다는 마음만 있었다면 지금껏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저 부처님 인연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09:30
자원봉사자들이 한두 명씩 사무실에 도착하자, 도시락 만들기가 시작된다. 계란지단이 노릇하게 익고 버섯이 기름지게 볶아지고, 20인용 밥솥 5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자원봉사자 이순옥(44) 씨는 4년을 하루같이 ‘밥 짓는 일’을 하고 있다. 13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혼자 초등학생 아들을 키운 이 씨. 그 모진 세월을 재봉틀 하나로 이겨내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허리 디스크가 찾아왔다. 수술 후 더 늦기 전에 뜻있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은 이 씨는 지인의 소개로 좋은 모임에 동참하게 됐다. 이 씨는 “어렵게 살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 처지도 잘 이해하잖아요. 그 예전 제가 너무나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했던 만큼 이제 힘겹게 사는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12:00
도시락 싸는 일이 끝나자 송대현(44) 씨가 200여 개가 넘는 빵을 가지고 왔다. 오전 내내 의정부 시내 빵집을 돌며 받아온 빵을 여러 봉지에 나눠 담은 후 복지시설에 전화를 한다, “좋은 모임입니다. 빵 가져가세요!”

‘봉사활동 5년차’인 송 씨는 식당과 가게, 학교급식소 등을 돌며 음식을 받아 오는 일을 하고 있다. 완성된 도시락을 배달하러 가는 차량을 운전하는 것도 송 씨의 몫. “언론에 기사가 나가도 후원하겠다는 사람보다 도와달라는 사람들의 전화가 더 많이 온다”는 송 씨는 “아무리 바빠도 좋으니 후원물품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쉰다. 옆에 있던 김 팀장이 “지금 들어오는 후원금으로는 차량 유지비와 가스비, 전기비 대기도 빠듯하다”고 거든다.

13:30
점심 식사를 마친 봉사자들이 도시락 바구니를 챙겨든다. 오늘은 도시락과 함께 ‘선물세트’가 준비됐다. 전날 협찬 받은 생필품들을 종류별로 담아놓은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특별 선물’을 드려요. 초복에는 삼계탕, 부처님오신날에는 생활용품세트, 동지에는 팥죽 등이죠. 어르신들이 먹고 싶다고 하는 게 있으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판자촌이 나타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반갑게 이들을 맞이한다. “더운데 고생이 많아. 잘 먹을게.” 집집마다 도시락을 배달하고, 어제 배달한 도시락을 수거하는 일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15:00
사무실로 돌아와 시원한 물 한 컵으로 목을 축이고 서너 평 남짓한 주방에 모여 앉는다. 수거해 온 도시락 설거지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00 할아버지 댁 청소 한 번 해드려야겠어요. 냄새가 너무 나더라.” “00 할머니는 입원하셨대요. 한 번 찾아가 봐야 할텐데….”

매일 같이 집으로 찾아가는 덕분에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의 집안 사정, 건강상태를 훤하게 꿰고 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치우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할 때는 보호자 노릇도 해야 한다.

봉사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제는 뭐 하셨어요?”하고 묻자 “밥 지었죠. 밥 안먹는 날도 있나요?”하며 웃는다. 토요일, 일요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매일 7~8시간씩 일하는 거야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이 나이에 남을 위해 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워. 참, 기자 아가씨. 굶는 어르신들 위해서 집이나 사찰에서 남는 쌀 좀 보내달라고 꼭 써줘요. 알았지?”

후원계좌: 국민은행 204-01-0766-273(예금주: 좋은 모임) (031)848-6114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3-08-05 오전 8: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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