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방학과 휴가를 맞아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피서지를 찾아나서는 발걸음은 빨라지는 대신 복지시설에는 후원금과 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현저히 줄어든다. 고아와 장애우 30여 명이 함께 사는 비인가 복지시설인 진여원 역시 요즘 찾는 이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지난 7월 24일 조용하기만 하던 진여원에 반가운 식구들이 찾아왔다. 선학원 중앙선원 신도회(회장 김영옥) 회원들이 음식재료와 선풍기, 옷가지를 잔뜩 싣고 봉사활동을 나온 것이다. 아침 7시부터 장을 보고 틈틈이 모아놓은 옷을 챙겨 진여원으로 한걸음에 내달려온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과 잡채를 만들기 위해서다.
봉사자들은 커다란 소쿠리에 가득 담긴 양파와 당근, 감자, 버섯 등을 눈 깜짝할 사이에 씻고 다듬은 뒤 가마솥에 불을 붙인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과 가마솥의 열기로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불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주걱으로 자장을 골고루 저어준다. 자장이 조금씩 끓는 동안 한켠에서는 잡채 만들기가 한창이다. 100인분을 한꺼번에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썰어놓은 야채를 볶고 당면을 삶아내는 ‘프로 주부’들에게는 거리낄 것이 없다. “짜다” “싱겁다” 입맛 따라 간장과 설탕을 번갈아 넣다보니 간은 저절로 맞춰진다. 선학원에서 직접 가져온 참기름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손맛을 더하니 맛있는 잡채 완성!
요리가 끝난 후 간단한 식사를 마친 회원들은 이번엔 숙소 청소와 목욕봉사에 나섰다. 몸이 불편한 장애우를 비롯해 네 다섯 살 꼬마 숙녀 상아와 채림이, 수정이까지 깨끗이 씻기고 나니 봉사자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그 사이 몇몇 봉사자들은 숙소 청소를 시작했다. 엉망이 되어 있는 방을 쓸고 닦고, 이불은 햇살 밝은 마당에 널어 말린다. 봉사활동이 모두 끝난 것은 오후 4시.
그동안 여러 복지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녔던 이들이지만 지난 5월 진여원에 다녀오고 나서는 매사에 활력을 얻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엄마의 손길’을 나누어주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로는 두세 달에 한 번 꼴로 진여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도회원들은 선원에 나올 때 마다 자녀들이 커버려 입을 수 없는 옷과, 직접 담근 김치 등을 가져오기도 하고 진여원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조금씩이나 회비도 걷는다. 이날도 시원한 여름을 나기 위해 필요한 선풍기 7대를 보시했다.
신도회장 김영임 씨는 “한창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진여원을 찾게 됐다”고 말한다. 신도회원 이연임 씨도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처음 왔을 때는 멋모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정도 많이 쏟았는데, 헤어질 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이날도 아이들은 서울로 돌아가는 봉사자들의 차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