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다. 가족끼리 아니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과 바다, 계곡으로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책만큼 좋은 동반자가 또 있을까. 배낭을 꾸릴 때 자칫 짐이 불어 난다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여행지에서 서늘한 글맛에 빠지면 오히려 더위도 잊을 것 같다. 책은 완벽한 나만의 섬이며 진정한 나의 휴식처이다. 불서의 바다에 빠져보자. 책방 여시아문에서 휴가철 배낭에 싸서 넣을만하다고 생각되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 10권을 스테디셀러와 신간을 엄선해 추천했다.<편집자주>
▲‘소리없는 소리’
서암스님시자 엮음
시월/8천5백원
<소리없는 소리>는 지난 3월 문경 봉암사에서 입적한 서암 스님 시자(侍者)들의 기억속에 묻어 두었던 스님의 자취와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다. 입적하기 전까지 봉암사 조실이었던 서암 스님은 조계종단내 대표적인 선승으로 문경 봉암사를 청정 수도도량으로 고집스럽게 지키고 길러낸 주역이다. 서암 스님은 서울에 오실때나 지방에 가실 때 꼭 값싼 통일호 열차를 이용했다. 의자가 딱딱해서 참선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또 혹 빈방에 전등이라도 켜놓은 것을 발견하시면 “너희 아버지가 한전 사장이라도 되느냐”며 시주는 스님들이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신도들이 피와 땀을 모아 내놓는 것인데 “왜 불필요하게 낭비하느냐”고 불호령을 내렸다. 스님의 이런 검약 정신은 또다시 찾아온 경제한파를 겪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가장 행복한 공부’
청화스님 지음
시공사/9천원
무한한 인내를 요하는 공부란게 결코 즐거운 일일 수만은 없을텐데 세상에 과연 행복한 공부가 존재할까. 하지만 40년간 하루도 바닥에 등을 대고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 하루 한끼만의 식사, 그리고 철저한 지계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이시대의 선지식 청화 스님(곡성 성륜사 조실ㆍ조계종 원로의원)은 참선과 염불을 가장 행복한 공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스님은 <가장 행복한 공부>에서 “참선이 어째서 행복한가하면 우리의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병을 고칠 수 있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한국병이니 무슨 병이니하는 ‘병’ 소리가 많이 나옵니다만 사실 우리 중생들은 누구나 ‘무명병(無明病)’에 걸려 있습니다. ‘무명병’이란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우리 중생들의 마음병입니다. 무명병을 치유하는 것이 우리 행복을 위해 가장 급선무입니다”고 설명한다.
▲‘화(Anger)'
틱낫한 지음/최민수 옮김
명진출판/8천9백원
여름철에는 날씨가 후덥지근해지고 불쾌지수가 높다보니 짜증과 화를 자주 내기 십상이다. 베트남 출신의 선사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의 <화:Anger>는 화내기 쉬운 세상에 어떻게 화를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법을 제시한다. 그는 먼저 화를 내는 자신의 내면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 보라고 권한다. 화는 남이 내게 주는 것이지만, 화를 냄으로써 인한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화내는 순간 자신을 살피면 성내는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다고 스님은 설명한다. 또 화내지 말라는 가장 큰 이유로 스님은, 화는 비록 그것이 어떤 정당한 이유를 갖더라도 자신에게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든다. ‘화가 날수록 말을 삼가라’, ‘용서도 화풀이의 한 방법이다’ 등의 구절들은 화가났을 때 마음에 새겨둘만한 스님의 화풀이 비법들이다.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여시아문/5천원
선방은 일반인들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이다. 선방의 속내를 비공개로 함은 불가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다. 선방의 일과가 솔직 담백하게 실려 있는 <선방일기>는 결제 수행을 마치고 용맹정진하는 선객들의 모습에서부터 사찰에서 스님들이 맡은 개인적인 소임, 선방의 생태와 풍속, 포살, 해제 등은 물론 3개월 동안의 결제 과정을 다큐멘터리 처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 지허 스님이 털어놓은 선방의 뒷이야기들도 이 책을 읽는 또다른 맛. 특히 조실스님과 주지스님 시자들의 서열다툼, 원주 스님 몰래 숯불에 감자를 구워 먹는 이야기 등은 속가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상의 풍경으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출가나 속가나 인간이 모여사는 곳은 매한가지구나’ 하는 진솔한 삶의 여운을 느끼게 해준다. 책 크기도 작은 포켓용으로 여행지에 들고가기도 편리하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비키매켄지 지음/세등 스님 옮김
김영사/9천9백원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는 한 여성 수행자의 고단했던 수행여정을 소개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텐진 빠모(50,Tenzin Pahmo)’. ‘수행을 계승하고 가르침을 떠받드는 영예로운 여인’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영국 태생 티베트 비구니다. 그는 24년 동안 인도, 티베트 등지에서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특히 그중 12년은 히말라야 설산 동굴에서 독거하며 치열하게 수행했다. 궁핍, 금욕, 고독을 견뎌냈고 그리고 여성이라는 편견을 극복해 영적 스승이 됐다. 물론 수행은 혹독한 추위와 육체적 질병을 이겨내는 등 고통 그 자체였다.
특히 동시대인의 기록인데다 참선, 요가 등 동양적 수행문화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는 서양, 그것도 여성의 구도 기록이기 때문인지 이 책이 과거 한국·인도·중국 선사들의 선수행담보다 더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꿈’
단정쟈춰 지음/성진용 옮김
호미/8천원
<꿈-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 사람들의 지혜>는 삶과 꿈의 뜻, 꿈 현상의 수수께끼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꿈을 다스려서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고, 사는 동안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며, 궁극의 경지인 해탈에 이르게 하는 수련방법을 싣고 있는 이 책은 ‘꿈을 다스리면 삶과 수행에 큰 힘이 된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인 단정쟈춰 스님(중국 오대산 우밍불학원 부원장)은 이 책에서 꿈을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의 세계관이 녹아 있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특히 여기에 소개된 티베트 역대고승들의 꿈 체험담은 삶과 꿈, 그리고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는 독톡한 관점을 제시한다.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잠들고 깨는 것, 죽고 살아나는 것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큰 스님들의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난다.
▲‘무소유’
법정 지음
범우사/6천원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은 법정스님의 수필집를 이렇게 평했다. 아마도 성직자가 쓴 책중에서 <무소유>만큼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책도 드물 것이다. 76년 처음 출간된 후 지금까지 이 책을 소유한 독자는 약 80만명. 문고본으로 초판 16쇄, 2판 63쇄를 찍었을 정도다. 그러니 우리나라 성인들은 한번씩 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정치·사회적으로 ‘돈’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 더 잘 팔리는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이 세상을 갖게 된다는 진리가 바로 스님이 이 책에서 전해주는 무소유의 이치가 아닐까.
<신간>
▲‘영어로 읽는 법구경’
담마난다 영역/이병두 국역
불교시대사/1만8천원
<법구경>은 아마도 불교경전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경전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용이 간결하며 아름답고 담백한 시어로 구성돼 있어 나이나 지적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다는게 큰 장점이다. 그래서인지 국내에도 스님과 불교학자들의 번역서가 많이 나와 있다.
파라미타 청소년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이병두씨가 말레이시아에서 불교포교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담마난다’ 박사의 영역본을 다시 번역한 <영어로 읽는 법구경> 역시 잠언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그대를 바로 잡아 주려 애쓰는 현명한 사람과 사귀라’, ‘교양이 있는 사람은 비방을 참는다’, ‘자신이 어리석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현명하다’ 등 교훈적인 메시지들이 많아 휴가철 자신을 되돌아 보기에 안성마춤인 책이다.
▲‘한걸음 한걸음’
마하 고사난다 지음/박용길 옮김
무한/7천원
살아있는 세계 3대 생불이라고 불리는 캄보디아 ‘마하 고사난다’ 스님의 생활명상 수행이야기다. 스님은 캄보디아 내전기간동안 모든 가족을 잃은 슬픔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명실상부한 캄보디아 불교의 상징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자비와 인내심, 온유와 평화가 흘러 넘친다. 가르침 역시 장황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그 의미는 깊고도 드넓다. 이 책의 핵심은 고난이 클 수록 그 안에 담긴 지혜와 자비, 평화의 씨앗 또한 알차다는 것이다. 특히 평화의 기도편을 보면 ‘헐뜯고 앙갚음 하려는 사람에게 증오의 마음은 그치지 않는다. 헐뜯고 앙갚음 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증오의 마음은 그친다. 증오는 결코 증오에 의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증오는 사랑으로만 풀린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고 말하고 있다. 32편의 길지 않은 법문들이 소주제별로 소개돼 있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악마, 부처님을 유혹하다’
윤창화 엮음
민족사/7천원
악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바로 수행자라고 답한다. 그중에서도 번뇌망상과 이별하고자 하는 수행자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근거로 이렇게 답하는 것일까? <악마, 부처님을 유혹하다>는 대장경 아함부 중에서 저자가 항상 많은 관심을 가졌던 부처님과 악마가 주고받는 대화 장면을 묶은 것이다.
윤 대표는 “악마는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때로는 위협적인 말로 공포를 조성해 부처님과 그 제자들로 하여금 수행을 포기하도록 하지만, 부처님과 제자들은 끝내 악마의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는 아름다운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 주지요.”라고 말한다. 주로 한글대장경을 바탕으로 교훈적이거나 수행에 도움이 되는 장면들만 모아 원문과 대조해 읽기 쉽게 일화 형식으로 구성해 놓아 재미와 감동이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