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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사회운동은 사회적 모순을 깨닫고(智慧) 그 모순을 제거하는 실천적 삶이다(慈悲).”
법륜스님은 불교의 사회운동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며 “성스러운 계율을 지킴이 곧 사회운동”이라고 규정했다. 또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이라며 “깨달음이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를 말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불교인이 사회운동에 임하는 자세로 ▲모든 실천은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진행할 것 ▲어떤 실천을 행할 때에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 ▲모든 운동은 삶과 사회의 각 분야의 고를 진단하고 무지를 타파해 현실을 개선하는 실천운동이 될 것 ▲자기변화와 세계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자기 삶 속에서 통일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신문명운동을 전개할 것 등을 제시했다.
스님은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개인 스스로 변화돼야 한다며 “개인적 깨달음은 사회 속에 구현돼야 완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진정한 깨달음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안목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질의응답
▲오늘날 상황은 부처님 당시 상황과 다르다. 부처님 당시 사회는 단순했지만 이제는 많은 구조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부처님 당시 5계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5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접근하라는 말 있다. 부처님 당시와 현재 사회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근본 밑바닥에는 인간의 삶이란 동일한 부분이 있다. 뿌리는 하나지만 현상을 여러가지다. 그래서 아직 계율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조명하는 정도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없는 계율을 새로 제정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필요가 있다면 제정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적용할 때 계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즉 부처님이 불사살생이라는 계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모든 중생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키우게 된다. 즉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면서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자애가 생긴다. 이런 계를 통한 긍정정인 마인드가 사회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될 것이다.
-동의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계율에 멈추지 말고 보시하는 것까지 이어져야 한다.
▲스님은 평등이 현실과 결부돼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평등을 현실화 할 수 있는지,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한지 이야기해 달라.
-늘 단순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람 이전에 생명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못먹어서 죽어나 병들에서 죽으면 생명존중 사상에 입각해 이들을 돕는 게 필요하다. 또 문자를 알아야 한다. 즉 문맹 퇴치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넘어서면 심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빈부격차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난하다고 해도 월수 오백불은 넘는다. 그러나 인도 둥게스리와리에서 잘살아도 50불이 안된다. 이런 빈곤은 절대적 빈곤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다. 이 경우 붓다의가르침을 통한 사고 변화가 필요하다. 불평등이 상대적인 문제일 때는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도 깨우칠 필요가 있다. 즉 내가 억압받고 있지만 또 남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평화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구십오프로 이상이 불자다. 캄보디아에서 남편을 잃은 부인에게 살인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부인은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불교적 관점에서 실제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사회적 행동을 하려면 일단 미움이나 분노가 없어야 한다. 분노 없이 큰 힘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하나의 불교적인 삶이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에서 나 자신도 잘 안 된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사회적인 모순을 고칠 때 마음의 평정을 이룬 상태에서 하라고 말했다. 나도 경험상 평정을 이룬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교계에서 하는 봉사와 다른 단체나 조직에서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또 평가 기준은 내면에 있는 것인가. 불교적인 사회봉사란 무엇인가
-차이는 내면의 차이다. 괴로워하면서 남을 도와주면 그것은 욕심에서 빚어진 것이다. 반드시 그 일 통해 자신이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 행복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된다.L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사르보다야처럼 정신적인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도움이 있음으로 자립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즉 도와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도움받는 사람들을 초점으로 해야 한다.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 입장에서 문제 해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모든 불교국가에서 유사한 관점 있다고 생각한다. 복수라고 하는 것 자비라고 하는 것 두가지는 불교 수행자로서 아주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처벌을 해 다시 반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자비도 필요하지만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는 차원에서 조치가 필요치 않은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또 그런 잘못을 저지를 경우 제재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일어나는 것에 대한 것 아니라 나중에 일어날 것에 대한 대비책이다. 여기서 대비책은 복수심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