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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락 시바락사 박사(INEB 고문, 태국)는 21일 오전 용인 삼성휴먼센터에서 열린 2003 참여불교세계대회 기조강연 ‘불교의 올바른 사상’ 중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정체성’ 강연을 통해 “진정으로 영적이 된다는 것은 사회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사회 발전을 위해 활동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불교는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 중심에 있는 것이고 사회 변화는 모든 종교의 정수”라고 규정했다.
기조강연에서 시바락사 박사는 “우리는 우리의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채워질 수 없는 욕심에 몰려 약탈자가 됐다”며 “명상 훈련을 통해 고양된 강하고 안정적이며 의지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 ▲행동 ▲통일체 ▲대화에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사는 행동에서 “현대 불교는 문화적 폭력뿐 아니라 구조적 폭력도 자각해야 한다”며 “우리 자신뿐 아니라 사회 역시 탐욕과 욕심과 미망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일체에서는 “우리의 전통적인 수행법을 고수해야만 하더라도 지구촌 시대를 맞아 다른 곳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도 배워야 한다”며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불교 신자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존경과 겸손으로 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에서는 “권력자들과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대중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도록 평화롭게 시위를 하고 선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사는 강연 말미에서 정신적 사고와 사회 변화는 둘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면서 “정신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사회적 물리적 환경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의 응답
▲사회적인 깨달음을 통해 사회적인 깨달음을 출발점으로 해서 개인적임 깨달음을 얻을 수 잇는가
-파라미타를 계속 발전시킨다면 현세에서 얻지 못하더라도 내세에서는 깨달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베트남 전 당시 틱낫한 스님은 자신의 삶을 희생에서 사회적 고통을 해소하려 했다. 이제 참여불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측면에서 성공했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현생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는가? 과연 내생만을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 현생에서는 불가능한 것인가?
-테라바다 전통에서 스스로 아라한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아라한은 복잡한 현실 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얀마에서는 아라한이라고 불리는 스님들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연스런 인간으로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복 자체를 입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는가. 두 번째 소비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는 현대 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는가.
-정체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그런데 만약 이 정체성을 집착한다면 에고가 된다. 불교적으로 볼대 정체성은 도반과 함께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소비주의가 팽배해 있다. 여러분은 언론에 의해 삶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교적으로 정체성을 규명하자면 사성제 중 고(苦) 문제를 짚어야 한다. 고를 폭력적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불교 국가들이 사회적인 깨달음을 덜 얻는 것 같다. 즉 불교 국가들이 민주적인 부분에서 덜 발전됐다. 서구 기독교 국가 사람들보다 아시아 불교국가 사람들이 사회적인 깨달음 정도가 낮은 이유에 대해 답해주길 바란다.
-서구가 더 민주적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형태는 그럴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은 더 많은 협의가 필요한데 서구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타인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최대의 무기수출국이다. 서구보다 아시아가 더 사회적 각성이 낮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서구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비폭력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이려 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불교가 서구, 기독교문화에서 배울 것이 있는가? 아니면 불교 자체에 모두 갖춰져 있는가
-막시즘에서 배울 수 있고, 불교는 막시즘과 유사하다. 우리는 기독교나 기독교의 접근방법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랍비와 기독교의 성직자의 경우, 우리 팔리아미터가 될 수 있다. 타종교의 성직자와 동반관계 맺고 있다.
▲나는 아시아 국가에서는 각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강조했다. 서구적인 전통이 사회적 의식을 많이 구현하고 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참여가 한가지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발전, 사회의식에 있어서, 진정으로 사회적인 각성을 만들어낼 구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 문제는 국가와 결탁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결탁을 통해 안락한 환경을 얻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과제는 국가와의 긴밀한 결탁 관계를 해결하는 것이다.
▲불교에는 열반이 있다. 명상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 있는가.
-현대 불자들 역시 열반에 이르길 원한다. 열반이란 저쪽에 있는 것 아니다. 많은 불자들이 지적으로는 많은 것을 갖추고 있지만 고통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