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를 개량한 식기로 식사를 한 다음 다기(茶器)잔처럼 만들어진 용기 뚜껑을 열고는 녹차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을 바른다. 선(禪)의 이미지로 디자인된 옷을 입고 컴퓨터 불교 게임을 즐긴다. 반야심경 독경소리가 울리는 휴대폰을 받고는 친구들과 함께 불교 설화 애니메이션을 보러 간다. 집에 돌아와서는 단순하고 간결한 선방 이미지에 불교전통문양으로 디자인된 침구와 가구로 꾸며진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상상이 아니다. ‘불교’를 소재로 한 패션과 인테리어는 이미 시장의 한 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문화의 세기’로 불리는 오늘날, 불교전통문화의 ‘콘텐츠 개발’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이 마침내 ‘불교문화상품’ 개발에 나섰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14일 “불교전통문화산업센터를 건립해 불교전통사상을 산업화 하겠다”고 밝혔다. 불교 유?무형의 문화를 ‘상품’으로 개발해 시장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영산재, 참선, 발우공양, 다도 등의 무형 문화는 실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개량해 직장과 가정에 보급하거나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사찰 문양이나 음식문화 등의 유형문화는 현대적 이미지에 맞춰 ‘상품’으로 제공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조계종은 템플 스테이나, 사찰 수련회, 연등축제 등을 예로 들고 있다.
문제는 상품으로서의 가치와 대중성을 확보하는 일. 바로 이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작업을 불교전통문화산업센터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계종은 불교전통문화산업센터 건립 예산을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10월 정기국회에서 예산이 반영되면 곧바로 공사에 착수해 3년 안에 완공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사실 불교문화의 ‘상품화’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7월 발족한 불교문화산업기획단은 몇 차례의 전시회와 함께 ‘불교문화 상품 개발을 위한 세미나’를 여는 등 불교문화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시작단계이기는 하지만 한국 불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캐릭터로 재창조하거나, 단청문양의 산업화, 황룡사지 등 불교문화재의 입체영상 복원, 게임, 음반 등의 ‘상품화’는 이미 몇몇 회사와 개인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불교문화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종교라는 입장만 내세우며 소극적이다. 불교계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계종 기획실장 현고스님은 “불교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상품화는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불교문화상품을 선택할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가질 있다. 포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 곧 ‘힘’인 시대에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