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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지금까지 탑골공원 주변 지역에 대해 조선시대 연산군 이후 원각사가 폐사되면서 500여 년 동안 민가가 들어서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원각사 관련 유구와 유물은 없는 것으로 판단해 왔다. 그러나 보리 스님(원각사 주지)이 촬영한 비디오에 나오는 장대석과 주춧돌 등이 지하에 묻혀있던 원각사 관련 유물로 판명될 경우 건설 공사 전에 반드시 지표조사를 거치도록 하는 법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청은 조만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디오 판독을 실시, 유물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법적으론 아무 문제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9층 규모의 오피스텔 용도로 지어지고 있다. 2002년 11월 2일 땅파기 공사를 시작해 현재 8층까지 골조공사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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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보호법 제20조(허가사항) 4항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일 때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과 제74조의 2(문화재 지표조사) ‘건설공사의 수립시 당해 공사지역에 대한 유적의 매장 및 분포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조항, 제43조(발견신고) ‘지하ㆍ해저 또는 건조물 등에 포장된 문화재(매장문화재)를 발견한 때에는 발견된 즉시 문화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이 제기한 3가지 위법 사항 가운데 ‘문화재청장의 허가’와 ‘사전 지표조사 실시’ 등 두 가지는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보호구역 밖이기 때문에 ‘문화재청장의 허가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청 문화재과 심의위원회 담당 허대영씨는 “오피스텔 신축 지역은 보호구역 밖이기 때문에 보존영향성 검토만 받으면 되고 이에 대해서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의 적법한 심의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사전 지표조사 실시’ 부분에 대해 현행 문화재보호법을 보면, 사업면적이 3㎡이상이거나 매장문화재가 포장된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에서 시행하는 건설 공사의 경우 사전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오피스텔 건설 공사는 3㎡이내 면적에 해당하고 “이미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 의해 원각사 관련 매장문화재의 출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에 지표조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서울시의 해명이다.
◇“앙각 저촉 여부만 규정은 문제다”= 서울시ㆍ종로구청과 조계종 총무원ㆍ보리스님의 의견이 맞서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서울시ㆍ종로구청은 “보호구역 밖이라도 매장문화재 출토 가능성이 있다면 지표조사를 실시해야 하지만 이미 이 지역은 매장문화재 출토 가능성이 없는 지역으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 판단됐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장과 서울시장이 협의해 만든, ‘국가지정문화재의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100m 이내(시 지정문화재는 50m)에서 건설 공사를 할 경우 문화재보존 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며 건물 높이는 앙각 27도 이내로 한다’는 서울시 조례에 따라 공사 허가를 내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과 보리 스님의 생각은 다르다. 총무원 이상규 문화과장은 “원각사지는 둘레만 해도 2.4km에 이르고 학자에 따라서는 조계사가 있는 견지동 일대까지 사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며 “이럴 경우 현재의 탑골공원과 그 주변지역은 원각사의 핵심지역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앙각 저촉 여부만 갖고 최소한의 지표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보리 스님은 “앙각 저촉 여부만을 살피는 기준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탑골공원 외부지역을 원각사 유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문화재 전문가 역시 “지난해 서울시립박물관이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지하 2m 지점에 원각사 건물지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고 산스크리트 문양 막새기와 등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볼 때 매장문화재 출토 가능성을 ‘제로(0)’로 보기는 어렵다”며 “이번 건은 이미 건물이 거의 다 올라간 상태에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향후 이 지역 건설 공사시 지표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주 내에 있을 비디오 판독 결과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땅파기 공차시 굴착기에 파헤쳐진 장대석과 주춧돌이 ‘유물’로 판명될 경우 탑골공원 주변 지역을 원각사 터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고, 앞으로 이 지역 건설 공사시 지표조사를 전제로 허가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한층 힘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원각사는?
비문에 따르면 사찰 둘레만 2.5km
연산군이후 폐사돼 탑ㆍ비석만 남아
현재 국가사적 354호로 지정돼 있는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 38-1번지 일대의 정식 명칭은 ‘원각사지’가 아니라 ‘탑골공원’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면 ‘조선시대 원각사 터에 세운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파고다 공원이라고도 불린다’고 나와 있다.
원각사(圓覺寺)는 조선시대 4대문 안에 건립된 유일한 왕실사찰로, 흥복사(興福寺)라는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을 조선 세조 10년 (1464) 중창하면서 원각사라 바꿨다. ‘대원각사비문’을 보면 사찰 둘레만 2,000보였다. 지금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2,480m. 현재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기준으로 반지름이 395m에 달하는 지역을 사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산군 10년(1504) 폐사되고 장악원(掌樂院) 또는 연방원(聯芳院)이라는 기생방이 되었다가 중종 9년(1514) 폐사의 목재를 헐어 공공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데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사찰 건물은 자취를 감췄다. 1895년 탑골공원이 들어섰으며 현재 탑(국보 2호)과 비석(보물 3호)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