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구인광고 보고 전화 했는데요. 네? 나이요? 일흔 살인 데요. 안 된다고요? 저 아직 건강해서 일할 수 있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휴···.” 체념 섞인 한숨을 내쉬는 안태천(72) 할아버지의 실감나는 연기에 오늘날 노인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7월 8일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관장 고재욱) 강당. 노인문제의 심각성과 해결방안을 노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이색적인 자리가 마련됐다.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노인문제 그 해결방안은’이란 주제로 열린 사회극 공연.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직접 배우로 나섰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이번 연극은 우리사회의 7% 이상을 차지하는 노인들의 무기력함과 부양의식의 변화 등 전반적인 노인문제를 다뤘다. 특히 무기력한 노인들을 외면하고 있는 사회를 묘사하는데 중점을 뒀다.
막이 열리자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진분순ㆍ71)와 등산모를 꾹 눌러 쓴 할아버지(이의채, 73)가 무대 중앙에 자리 잡는다. 할머니는 애처롭게 돈을 구걸하기 시작하고 이에 지친 할아버지는 바닥의 담배꽁초를 주워 핀다.
그래도 이들은 나은 편. 뒤이어 등장한 두 노인(전복주ㆍ70, 이학원ㆍ68)은 지팡이를 짚고 허리조차 펼 수 없다. 간신히 걸음을 떼며 구걸하는 이들을 냉정하게 지나치는 젊은이는 우리사회 노인문제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
2막에서는 부양의식의 변화를 조명했다. 명절날 아침 노부부(안태천ㆍ72, 김정숙ㆍ69)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자식들을 밝은 얼굴로 맞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냉랭하기만 하다. 오히려 퉁명스럽게 핑계 대며 자리를 피하려고만 하는 아들내외.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어휴, 내 저 녀석을 어떻게 키웠는데….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 맘도 몰라주고. 돈 없으니 이제는 찾지도 않겠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신세를 한탄한다. 관객들도 자신의 넋두리인 양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눈시울을 붉힌다.
반응은 좋았다. 연극을 관람한 윤석선(72) 할머니는 “노인치매 문제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가슴 아프고 마음이 무겁다”며 치매노인 보호·치료시설의 설립이 시급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