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80년대는 한갓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전락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 현재 진행형인가? 마지막 빨치산과 민중불교운동연합(이하 민불련) 운동가들의 아름다운 만남이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7월 9일 서동석 전 총지종 사회복지재단 실장(전 민불련 의장)과 이남재 월곡청소년센터 관장(전 민불련 기획국장)은 인천 나사렛 한방병원을 찾았다. 마지막 빨치산인 정순덕(71)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정 할머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5월 경.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정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며칠 후 할머니를 직접 찾은 서 전 실장과 이 관장은 4년째 병석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를 보곤 나들이를 계획했다.
이 관장의 차에 탄 정 할머니는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해 12월 바깥 구경을 하곤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 듯 내리던 비도 자취를 감췄다. “할머니가 어제부터 일기예보를 유심히 지켜봤다”며 김명덕(58) 간병인이 귀띔을 한다.
정 할머니 일행이 도착한 곳은 천안의 한 가시오가피 농장. 국군에게 잡히면서 입었던 총상으로 다리 한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23년간의 감옥 생활을 꿋꿋이 버텨오던 할머니였지만, 4년 전 갑자기 찾아온 중풍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몸 왼쪽이 마비가 됐지만 가시오가피를 복용한 후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는 할머니는 한번 농장을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털어놓았고, 오늘에서야 소원이 실현된 것이다.
진각복지재단 지현 사무처장이 마련해 준 새 휠체어를 타고 농장을 둘러보는 정 할머니의 얼굴에는 모처럼 웃음꽃이 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 할머니의 얼굴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모처럼 만의 나들이가 이제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서 전 실장과 이 관장에게 “이렇게 좋은 구경을 시켜줘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서 전 실장과 이 관장은 한달에 한 번 정도는 할머니와의 나들이를 지속할 계획이다. 또 병원이 아닌 살림집을 마련해 여생을 편안하게 모실 생각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진철승(자유기고가, 전 민불련 문화부 차장)씨와 명진스님(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80년대 민불련이나 각종 조직에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이는 정치권으로 들어갔고 어떤 이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이는 출가를 했다고 한다. 그 중 불교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 지난 해 2월 불교문화정보네트워크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서 전 의장은 “정치가 단순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때 민중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현재는 그 반대편에서 서서 전력을 훈장인 냥 팔아먹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민불련은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를 관통하는 현실이다”며 일침을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