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사형제도, 사법적 살인인가 국가질서 유지를 위한 필요악인가? 최근 유럽회의 45개국이 사형제를 전면 폐지한다는‘유럽인권회의 13호 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사형제 폐지 찬반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 7개 교단으로 구성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인연합(이하 범종교인연합)’은 7월 8일 서울 조계사에서‘사형제 폐지 기도모임’을 갖고, 연말까지 기도모임을 소속 종단별로 매달 열겠다고 밝혔다.
또 범종교인연합은 앞서 지난 6월 25일과 26일 강금실 법무장관, 박관용 국회의장을 잇따라 만나, 사형제페지특별법안의 9월 정기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등 대정부 압박 강도를 한층 높였다. 그간 ‘사형은 또 다른 살인행위’라고 주장해온 범종교인연합의 사형 폐지운동이 정점에 다다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국민의 법감정을 이유로 사형제 폐지에 난색을 보이고 있고, 국회도 법률안 심의조차 하지 않은 채 뒷짐만 지고 있다.
사형제 존폐 논쟁의 핵심과 불교 등 종교계가 폐지에 나선 이유, 그리고 불교적 해법과 현실적 대안을 없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폐지운동, 어떻게 전개됐나=사형제 폐지를 이끌고 있는 곳은 종교계다. 지난 2000년 출범한‘사형제 폐지를 위한 불교운동본부’를 비롯한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등 7개 교단은 2001년 1월‘범종교인연합’을 결성해 사형제 폐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교단은 그간 폐지 서명운동, 심포지엄 개최, 포스터와 소책자 발간 등 대국민 홍보를 해왔고2000년 7월에는‘사형제폐지특별법’의 입법을 이끌어내는 등 괄목한 성과를 보여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52명의 사형수는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고, 현행 우리나라 형법과 각종 특별법에는 총 103개 조항에 걸쳐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규정돼 있다. 또 폐지논란의 분수령을 이룬 지난 1996년에는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관련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림으로써 폐지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판결 요지는 생명을 빼앗는 형벌이라도 다른 생명 또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된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사형제 폐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피하고 있다.
▼존치와 폐지, 그 핵심 쟁점은?=‘필요악'인가 ’사법살인‘인가. 논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사형제가 국가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악’이라는 존치론자들의 주장과 사형은 ‘사법살인'이라는 폐지론자들과의 입장차이만을 확인하게 했고, 결국 법무부ㆍ검찰 등의 정부와 종교계의 대립양상으로 치닫게 했다. 이처럼 사형제 존속여부를 놓고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는 가운데, 정부는 우선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를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있다. 정부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흉악범, 가정파괴범 등 강력범죄의 예방 효과에 사형제가 크게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또‘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는 국민 법감정을 감안할 때 사형제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가정파괴범 등의 흉악범죄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게 일반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것이다.
폐지론을 주장하는 종교계는 정부의 이 같은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사형제의 범죄예방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4월 국제사면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사형제는 범죄발생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며 “오히려 미국의 경우 사형집행 건수가 늘어나는데도 살인사건 발생률은 증가한다”고 밝혔다. 이는 ‘개선과 교정’을 통한 범죄 예방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한 단적 사례로 제시되는 것이다.
특히 폐지론자들은 사형제는 인간의 기본권이자 가장 중요한 생명권을 앗아가는 것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반인간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끊을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폐지론자들은 △오판피해의 회복 불가능성 △국가교화기능의 포기 △정치적 악용 등 이유로 들고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본 ‘사형제’=마땅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입장이다. 불교는 생명에 대한 자비를 으뜸 덕목으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국가가 타인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전에서도 이 같은 불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범망경>에 “죽이는 인(因)과 죽이는 연(緣)과 죽이는 방법과 죽이는 업(業)으로 목숨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숫타니파타>에는 “산 것을 몸소 죽여서도, 남을 시켜 죽여서도, 그리고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서도 안 된다”고 설하고 있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의 목숨을 인위적ㆍ제도적으로 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명존중사상’을 천명한 것이다.
조계종 사형제도 폐지위원장 진관 스님(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은 “죄의 대가는 따로 치르게 하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부처를 죽이고 나를 죽이는 일”이라며 “다시 원한을 맺는 악업의 윤회를 되풀이할 뿐이다”고 사형제 페지를 주장하고 있다. 김철우 기자
◆ 외국의 사형제 폐지 추세는?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에 따르면, 2003년 현재 156개국이 사형제도를 완전 폐지했다. 이는 지난 2002년 4월 기준 111개국에서 45개국이 늘어난 수치로, 최근 사형제 전면 폐지를 밝힌 유럽회의 45개국이 포함된 것이다. 또 튀지니와 터키 등 20개국은 최근 10년간 사형집행 사례가 없어 실질적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은 사형제가 존속하고 있지만 군법이나 전시에만 적용되는 부분적 폐지국이다. 지역적으로는 유럽과 중남미국가 대부분이 사형제를 없앴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이란, 미국 등의 아시아ㆍ중동ㆍ북미ㆍ아프리카 상당수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