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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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성불(成佛)에 이르는 길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무문관에서 수십년간 화두를 붙들고 용맹정진하는 선승들, 설산에서 몇년씩 고행정진을 일삼는 구도자들에게 깨달음은 목숨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런 고행에 있어 여성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는 한 여성 수행자의 고단했던 수행여정을 묶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텐진 빠모(50)’. 수행을 계승하는 가르침을 떠받드는 영예로운 여인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영국 태생 티베트 승려다. 그는 24년 동안 인도, 티베트 등지에서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특히 그중 12년은 히말라야 설산 동굴에서 독거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치열하게 수행했다. 인간이 삶을 살아나가는데 지독하게 불리한 위험, 궁핍, 금욕, 고독을 견뎌냈고 그리고 여성이라는 편견을 극복해 영적 스승이 됐다. 특히 그는 벽장 하나 크기의 좁은 공간에서 ‘여성은 은거 수행을 할 수 없다’는 편견에 맞서 자신을 단련해갔다. 물론 수행은 고통 그 자체였다. 혹독한 추위와 육체적 질병을 이겨내며 더 높은 영적인 경지에 오르려는 외로운 텐진 빠모의 ‘싸움’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동시대인의 기록인 데다 참선, 요가 등 동양적 수행문화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는 서양, 그것도 여성의 구도 기록이기 때문인지 이 책이 과거 한국·인도·중국 선사들의 선수행담보다 더 신선한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1943년 영국 런던에서 생선장수의 딸로 태어난 그가 불교에 다가서려고 고향 런던을 떠나 인도로 발길을 돌릴 때의 나이는 스무살. 이후 그는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캄트룰 린포체와의 만남을 통해 불법에 귀의했고, 서구 여성으로서는 티베트불교에 출가한 두 번째 인물이 됐다. 그러나 린포체의 수백명의 제자들 중 홍일점인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행공동체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된다. 티베트불교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속에서 그가 택한 길은 개별 수행. 그는 요가 수행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히말라야의 한 동굴로 들어갔다. 바로 이 책에는 삶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던 벽안(碧眼)의 아가씨가 이 동굴안에서 불성(佛性)을 체득해가는 과정이 촘촘하게 펼쳐져 있다. 이 글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영국 언론에 꾸준히 글을 써온 저자의 꼼꼼한 취재와 불교 내 여성 문제에 관심이 큰 세등 스님의 편안한 번역이 잘 만났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깊은 영국 출신 여성 저술가 비키 매켄지. 텐진 빠모에게 책의 출간 허락을 어렵게 받아내어 면담, 구술, 행적 답사를 통해 완성했다. 번역자는 불교 여성학 연구를 위해 94년부터 4년동안 UC 버클리 대학의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비구니 세등 스님. 간결하지만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번역 실력 때문인지 한 인간의 수행 궤적이 술술 넘겨진다. 수행자인 세등 스님도 이 책의 후기에서 ‘나도 끝내 여성의 몸으로 깨달으리라’라는 다부진 각오를 적고 있을 정도로 발심의 주먹을 꽉 쥐게 만든다. 바로 책장을 넘길수록 텐진 빠모의 치열한 수행정신과 그 고단했던 행보가 큰 울림으로 짜릿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남성, 여성이라는 분별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성불의 길이 워낙 험난하기에, 붓다는 여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여성을 물리치는 몇 마디 말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비키매켄지 지음, 세등 스님 옮김
김영사
9천9백원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3-07-02 오전 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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