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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원흥사지 택지개발 반대 10만 서명운동
조선왕조실록에 목판 금강경 인쇄지로 기록된 청주 원흥사지가 시굴조사된다. 이는 최근 충북지역 45개 시민단체가 “청주가 세계문화유산인 금속활자 직지를 탄생시킨 고인쇄문화의 메카가 된 것은 그보다 72년 앞서 고려시대 목판 금강경이 인쇄된 원흥사에서 기반하는 만큼 사지의 발굴및 보존이 시급하다”는 성명과 함께 10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한데 따른 것이다.

청주시 산남3지구를 청주지방검찰청과 아파트 단지 예정지로 지정한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는 17일 문화재청에 원흥이 방죽 북서쪽 구룡산 기슭 1만여평의 시굴조사(표본조사)를 신청했다. 이달 안으로 시굴조사를 마무리 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는 토지공사 충북지사는 원흥이 방죽 일대가 원흥사지라는 증거나 유물이 나오면 토지이용 계획을 수정하고, 문화재 현장 보존지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청주 원흥사는 현재 자세한 사적기가 남아있지 않는 상태다. 다만‘조선왕조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초기까지 현재의 원흥사 터에 규모가 크고 목판 금강경등을 출판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서대사가 있었다고 전한다.

또 원흥사가 법주사와 함께 고려시대 교종을 대표하는 법상종(法相宗) 사찰이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법주사 미수대사 비에는 법상종 고승이었던 자정국존 미수대사가 원흥사에 주석 중이던 종연(宗然)스님으로부터 법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에는 부산시에 사는 박모씨가 소장중인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의 간기(刊記)에 고려 충렬왕 31년인 1305년에 육구거사 박지요 등의 발원으로 청주목에 있는 원흥사에서 책을 간행 했다는 기록이 발견돼 중요자료로 평가된다. 간기에는 있는 ‘원흥’이라는 지명은 청주 산남지구 안 원흥이 방죽 밖에 없다. 주민들도 이 일대를 원흥사지로 알고 있으며, 구룡산 자락에서 주춧돌과 탑부재, 고려토기 등이 다수 발견되는 상황이다.

한편, 생태교육연구소 터 등 충북지역 45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원흥이 방죽 두꺼비마을 새애문화보전시민대책위원회와 직지포럼은 공동으로는 19일 청주시의회 회의실에서 ‘원흥사와 흥덕사-목판과 금속활자’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승환 충북민예총 회장, 박종룡 청주시의원, 이국흠 충북문화재연구관등은 “목판 금강경을 인쇄한 원흥사 주위에 철 제련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원흥사에서 인쇄된 목판은 금속활자 직지 인쇄의 선행단계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책위는 원흥사가 금속활자본 '직지'를 인쇄한 인근 흥덕사의 본찰이었을 것으로 보고 택지개발 계획 인가의 전면 유보를 충북도에 촉구키로 했다.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
2003-06-20 오전 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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