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 도착한 그녀는 꿈에 그리던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게 된다. 애니 파첸 스님은 이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을 탈출한 것은 달라이라마 성하를 뵙고자 한 일념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성하를 모시고 공식 기자회견을 했을 때, 더 이상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죠. 수감기간 중 성하를 친견하리라는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
다람살라에 정착한 이후 애니 파첸 스님은 수행에 집중하면서 불성의 영원함, 초월, 자비, 용서 등을 더욱 내면화 시켰다. 아울러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어려운 티베트 난민들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 독립운동의 이력과 선행이 알려지자 애니 파첸 스님은 다람살라에 살고 있는 많은 티베트인들에게 영웅이 되었으며, 외국 특파원들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기도 했다. 이때 기자들은 자주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중국의 감옥에서 당신을 고문한 교도관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지요?”
이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말하곤 했다.
“그것은 단지 업(karma)일 뿐이었죠. 나는 나를 투옥한 사람들이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교도관들 역시 양심을 가졌기에, 그들의 정신적 고통과 아픔을 자연스럽게 떠안기로 마음먹었을 뿐입니다.”
애니 파첸 스님은 2000년, 자신의 일생을 다룬 책 <슬픈 산: 티베트 비구니 전사의 여행(Sorrow Mountain: The Journey of a Tibetan Warrior Nun)>을 출판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스님은 <슬픈 산>에서 이렇게 출간의 변을 밝히고 있다.
“처음에 나는 출판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감옥에서 나보다 더 고통받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결국 망명정부의 설득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젊은 티베트인들에게 나의 체험담은 티베트 현대사의 중요한 증거이자 종교적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수감기간 동안의 고문 휴유증으로 건강이 많이 악화됐지만, 애니 파첸 스님의 정신력만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티베트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열심히 강연하는 한편, 티베트 독립을 촉구하는 평화시위에 참석했다.
남은 여생동안 애니 파첸 스님은 미국 이외에도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등에서 티베트 독립을 호소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미국 의회와 각국 정부, 심지어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티베트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서구인들은 이 부드러운 ‘여전사’를 통해 티베트 독립운동이 격렬한 투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애니 파첸 스님은 <슬픈 산>의 후기에서 이렇게 자신의 일생을 회고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중국의 침략에 항거했습니다. 라사에서 평화적인 티베트 독립시위를 벌였으며,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보전하기 위해 정진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나의 이야기는 남을 것입니다.”
애니 파첸 스님은 이 책이 나온 지 2년뒤의 입적을 미리 암시하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생은 하늘의 번개나 풀잎의 이슬처럼 순간적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재물들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합니다. 단 하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