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문화의 종주국 자리를 놓고 한-중 간 자존심 대결 양상까지 벌여왔던 석가탑 출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이 확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서 수집가 겸 연구가인 조병순 성암고서박물관장은 3일 열린 한국서지학회 2003년도 1차 학술발표회에서 “중국학자들이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이라고 주장해온 일본 서도박물관 소장 묘법연화경(1906년 중국 투르판 발굴)에는 측천무후자가 한 글자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석가탑 출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측천무후자 4자(證, 地, 初, 授)가 10차례 나오는 만큼 석가탑 출토 다라니경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목판인쇄물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측천무후자는 중국 유일의 여황제였던 당나라 측천무후(690~705년 재위)가 당시 일부 한자의 글자체를 바꿔 만든 한자. 그의 사후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불교 경전 등에는 한동안 사용됐기 때문에 사용 여부나 빈도에 따라 8세기 이후 불경의 간행 시기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조 관장은 “690년 경 간행됐다는 묘법연화경에 측천무후자가 없다는 것은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서도박물관 소장 묘법연화경은 그 동안 외국 학자는 물론 일본 학자에게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조 관장은 1936년 당시 서도박물관장이 박물관 허가 등기가 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동호인과 친구에게 나눠진 복제품을 입수, 검토함으로써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