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에서 쓰이는 연륜연대학(年輪年代學)을 고건축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연륜연대학이란 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해 과거의 기후나 생육환경, 연대 등을 알아내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1910년대부터 문화재 연구에 응용되고 있는 방법.
최근 열린 한국미술사학회(회장 변영섭) 제134회 월례발표회에서 경주대 이강근 교수(문화재학부)는 “연륜연대학을 이용하면 사용된 목재의 벌채 시기까지 알 수 있어 논쟁이 되고 있는 목조건물의 연대를 명확히 결정할 수 있다”며 고건축 연구에 연륜연대학의 연구성과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수리공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상량문(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등을 적은 글)을 근거로 목조건물의 대체적인 양식 변화를 이해해 왔다. 하지만 고려, 조선전기, 조선후기 정도로 연대 구분이 가능할 뿐 여말선초나 조선중기의 양식을 따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고, 같은 조선후기라도 300여 년간의 양식 변화를 세분화해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부터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간 전북 완주 화암사 극락전. 1981년 해체수리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정유재란 때 불타 조선 선조 38년(1605) 다시 건립했음을 알 수 있는 화암사 극락전은 금산사 금강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앙식(下昻式) 건물.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하앙식 구조는 백제시대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굉장히 오래된 부재다.
문제는 극락전의 앞과 뒤에 남아있는 하앙의 구조가 다르다는 데 있다. 원래 하앙은 극락전 뒤쪽에 남아 있는 하앙처럼 끝부분이 예리하게 치켜 올라가 있는 모양. 반면 앞쪽의 하앙은 용모양이 장식돼 있어 같은 종류의 부재이면서도 양식이 다르다. 이 때문에 뒤쪽의 하앙은 불타다 남은 원래 부재를 그대로 썼고 앞쪽은 장식적 경향을 띤 조선후기 양식이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연륜연대학 연구가인 박원규 교수(충북대 임산공학과)가 해체보수 공사시 교체하면서 버린 하앙을 수습해 연륜연대를 측정한 결과 앞뒤 하앙의 벌채 시기가 1605년으로 똑같이 나왔다”며 “이는 정유재란 때 불타고 지었다는 기록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현존 건물은 완전히 새로 지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고려말이나 조선초기냐는 논란이 있는 봉정사 대웅전 등에도 연륜연대학을 적용하면 건립 시기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연륜연대학의 연구 성과는 목조건물의 양식사 정립에 보다 객관적인 자료로 쓰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연륜연대학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 양식을 그대로 따라 중수했지만 목재는 조선 후기 목재일 경우 연륜연대학만으론 밝혀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건축사 연구자들의 몫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