點頭 (지유철한암점두)
한 밤에 구름 개어 달이 못에 비추니
한광은 푸른물결 속의 달을 뚫네
한광이 끝이 없음을 아는 이 없어도
사무친 이 만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네
만공조실스님께서 어느날 全國諸方禪院에 한 글귀를 돌리셨는데 “良久도 第二句며 蒼天蒼天도 第二句 이니 어떤 것이 第一句 인가!”라는 問題였다. 제방선원에서 많은 答이 왔으나 그 중에 八空山 桐華寺의 衲子가 “어찌하여 第一句를 묻지 않습니까?”라고 보내왔다. 조실스님께서 보시고 다시 反問 하시기를 “내가 일찍이 第一句를 묻지 않았거늘 어찌 묻는데 이르는가?” 하셨다. 그 후에는 答이 오지 않아 조실스님께서 다시 偈頌을 보내셨다.
桐華山上獨甁花 (동화산상독병화)
花盡結實好待風 (화진결실호대풍)
동화사 산위에 독특한 병꽃이여
꽃지고 열매 익어진 후에 아름다운 미풍 기다리게 하라
대중들은 일러보라 어떤 것이 第一句 인고!
<柱杖一打>
뚜렷하거늘 衲子가 알지 못했다. 설사 분명히 가려 낼 지라도 콧구멍이 내 손에 있다. 第一句를 물으시니 귀가 따갑고 묻지 않았다 하니 귀가 멍멍하다.
조실스님의 뜻이 어디에 있었던고!
먼저 第二句를 물으심은 衲子로 하여금 광채를 돌이키어 스스로 返照 하여 本來兩目을 보게 하려 함이니 담장을 넘어 뿔을 보면 문득 소인줄 알라 털끝만치라도 어긋남이 있다면 천지가 더욱 멀어지리라.
다음에 第一句를 물으시니 이것을 딴 곳에서 찾지 말라 찾으면 도리어 눈에 모래알만 보태리라.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생각이 끊어지고 攀緣을 잊어서 교묘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오직 마음으로만 傳할 수 있다 하였으니, 하늘이 맑으니 달에는 서리바퀴 구르고 강이 맑으니 산 그림자 물에 비친다.
따라서 항상 언어 밖의 소식을 妙하게 깨닫고 形相以前의 實體만을 얻어야 하는데 淨名이 침묵으로써 法을 보이었을 때 文殊菩薩이 칭찬을 했고, 空生이 말없이 설법하셨고, 帝釋天王이 들음 없음으로써 들은 것이 이것이니라.
알겠느냐!
(주먹을 들어올리시며)
霜天月落夜將半 (상천월락야장반)
誰共澄潭照影寒 (수공징담조영한)
서리찬 하늘에 달은 지고 밤은 깊었는데
누가 맑은 못 찬 그림자를 비출고.
■도리를 아는 날이 해제날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가 계정혜 삼학으로 성불의 궤도를 삼았으니 이 길을 떠나 성불작조(成佛作祖)한 이는 한분도 없다.
고조(古祖)가 이르되 계기(戒器)가 견고해야 정수(定水)가 청정하고 정수가 청정해야 혜일(慧日)이 방현(方現)이라 하였고, 또 이르되 계(戒)의 땅이 든든해야 정(定)의 집을 지을 수 있고 정의 집을 지은 뒤에야 혜(慧)의 창문을 달 수 있다고 하였다.
계정혜 삼학을 갖춘 이는 생사를 해탈할 수 있지만 계와 정이 없이 혜만 밝은 사람은 설법을 구름 펴듯 비내리듯 잘 해도 건혜(乾慧)라서 생사를 해탈할 수 없으니 납월 삼십일이 되면 몸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서 염왕사자에게 끌려 어두운 굴 귀신골짜기에 굴러 떨어질 것이다.
금일대중은 계행을 가지고 정력(定力)을 닦아서 바른 깨달음을 얻어 성불작조하기 바란다. 내생에 사람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는 그 수가 손톱위의 흙과 같이 적고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숫자는 대지의 흙과 같이 많다고 하였다.
고인이 이르되 차신(此身)을 불향금생도(不向今生度)하면 경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하였으니 사람 몸 받았을 때 꼭 일대사를 끝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세은(世恩)을 버리고 출가한 몸으로 금생에 일을 마치지 못한다면 시은(施恩)을 갚지 못한 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힘쓰고 힘쓸 지어다.
약장심식탁오종(若將心識度吾宗)
흡사서행각향동(恰似西行却向東)
연륜면피친견철(攣輪面皮親見徹)
단단홍일상고봉(團團紅日上孤峰)
만약 알음알이를 가지고 불법을 알고자 한다면
서쪽으로 가야 되는데 동쪽으로 가고 있는 것과 같다.
부모가 낳아 준 얼굴 가죽을 확 벗겨버리고 똑똑히 보라.
둥글고 둥근 붉은 해가 외로운 봉우리에 오를 것이다.
대중은 조석으로 예불하면서 부처의 진면목을 보았는가.
국수월재수(국水月在手)요 농화향만의(弄花香滿衣)로다.
물을 움켜 쥐니 달이 손에 있고 꽃을 만지니 향기가 옷에 가득하구나.
대중이여 오늘 결제를 했지만 아무 때고 이 도리를 아는 날이 해제날이니라. 喝!
■선방 뒷마루에 앉아 차 한잔 합시다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 지허 스님
진설수행불재지(盡設修行不在遲)
금생환유후생기(今生還有後生期)
삼도일보오천겁(三途一報五千劫)
출득두래시기시(出得頭來是幾時)
수행에 늦음이 있지 않다고 모든 말을 다해놓고
금생이 지나면 후생을 기약한다 하니
한번의 삼악도가 오천겁인데
어느때 머리를 들고 나올거나.
누구나 수행함에 있어 늦고 이르다 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수행의 목적은 생노병사를 해탈하고 견성성불하는데 있으니 늦게 수행길에 든 사람은 절망하지 말고 돈독하게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요, 일찍 수행길에 오른 사람은 자만하지 말고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산에 오르는 경쟁을 하는데 빨리 뛰는 토끼가 자만하여 늦은 거북이에게 정상에 먼저 오르는 자리를 빼앗겼다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일찍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견성성불하는데 누가 얼마나 집요한 노력으로 결과에 도달하는데 있지, 승가와 속가도 없고 남녀노소가 없이 불성을 가진 중생은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평등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금생에 정진을 하다가 안되면 내생에 한다고 하고, 이 결제 동안에 못깨치면 이 다음 결제에 꼭 깨친다고 미룬다면 언제 견성오도를 이루겠습니까?
납자들이여! 모든 수행자들이여!
태초이래 공겁(空劫) 중에 올 하안거 밖에 없습니다. 오늘밖에, 이 순간 밖에 더는 없습니다. 우리의 공부는 시공이 다 멸한 공부며, 전후좌우도 다 떨어져 나간 공부입니다. 우리도 조사스님과 같이 용맹 가용맹하여 이 하안거 내에 끝을 냅시다. 그렇다고 포단(蒲團)에 앉아만 있으면 답답하여 육단심만 생기니 화두의심은 놓지 말고 어묵동정간에 성성(惺惺)하게 나아갑시다. 더러는 차도 한잔 마셔가면서 대장부 호연지기를 화두 하나로 펼쳐 갑시다.
요즘은 차를 따고 차를 만드는 때입니다.
적적요요(寂寂寥寥)한 깊은 산골 멀리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산새소리 맑은데 납자가 순일한 화두를 들고 차를 따고, 차를 덖고 마시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지 모릅니다. 더러는 도반과 도담(道談)을 한다면 극치 중에 극치입니다.
옛날 중국에 위산영우(爲山靈佑) 선사가 이만 때 차를 따고 계셨습니다. 선방 포단에 앉아 있던 앙산혜적(仰山慧寂) 선사가 어느새 나와서 같이 차를 따고 있었습니다. 찻잎이란 한번 피기 시작하면 시간을 다투어 견고해져 버리니, 일년 차양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하루종일 바쁜 손길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그 날도 두 스님은 해가 지도록 차를 따고 있었습니다.
위산 스님이 갑자기 앙산 스님에게 말하기를 “종일 차를 따도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형체는 보이지 않으니 그대의 근본 형체를 한번 보여주게나” 하였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앙산 스님이 차나무를 한번 흔들었습니다. 이를 본 위산 스님은 “그대는 작용만 얻었지, 본체는 얻지 못했구나” 했습니다. 이에 앙산 스님이 “화상은 어떠십니까” 물었더니, 위산 스님은 양구하셨습니다. 앙산 스님은 “화상은 본체만 얻었지, 작용은 얻지 못했군요”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위산 스님은 “그대에게 상십봉을 때리노라” 했습니다.
오늘 계미년 하안거 결제일 좋은 날이니 선방 뒷마루에 앉아 차나 한잔 합시다.
(하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