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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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 시대를 위해 꽃등을 밝히자
현대 한국 문화를 움직이는 주체세력은 이른바 N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컴퓨터나 이메일, 혹은 핸드폰 등을 통해 손쉽게 의사를 소통한다. 필요에 따라 쉽게 뭉치고 쉽게 헤어진다. 과거의 윤리나 도덕에 얽매이지 않으며 사회의 변화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 몰입하며, 남을 간섭하지도 않고 남의 간섭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이 사회 변화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정치인, 기업가, 종교인 등은 이들의 움직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각 계층이 추구하는 목적은 다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면서 찬탄의 노래를 하지 않고 젊은 세대를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이 사회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며, 경제인들은 이들의 취향을 알아야 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저들을 종교인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젊은 세대들은 현재와 미래에 걸쳐 한국 사회의 주축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한국사회고 보면 젊은 세대의 층은 더욱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불교계 역시 저들과 소통할 통로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꽃등이 거리를 장식한지 오래다. 시내든 농촌의 들녘이든 아니면 산간의 사찰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 훈향을 드리운 곳은 어디나 꽃등이 있다. 낮이면 가로수에 걸려 하늘거리는 모습이 한 떨기 꽃과 같거니와 밤이면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거리를 밝히고 있는 모습에서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가슴에 새겨 보기도 한다. 꽃이나 빛으로 환생하여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온몸이 저리도록 감동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꽃과 빛이 아름답고 향기가 짙을수록 그 꽃과 빛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재생하길 바라는 것 역시 불교도들의 소망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찬란한 신문명의 꽃과 빛으로 화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서원이 있기에 N세대에 대한 관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무상의 법칙 속에 전개되고 있기에 특별히 어느 계층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하는 것도 애착이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무집착이 최고의 미덕은 아니다. 인류의 문명이 눈부신 진보를 거듭했다고 말하지만 문명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집단 무의식의 저변에는 아직까지도 인간들의 원시적인 야수성이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고주의에 물들어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평화, 자유, 환경 등 인류문명의 소중한 가치들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기에 정신적으로 진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무명으로 엮어진 것이 인류사 내지 인류 문명사라는 점에서 이 시점을 반성하려는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문명을 위해 이 시점을 중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N세대에 대한 관심과 연구이다. 적어도 이들만은 무명에 의해 문명을 창출해 가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기 위해 이들과 왕래할 교통로를 개설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불제자의 입장에서 그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화두이며, 여래께 올릴 수 있는 최상의 찬탄이요 헌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03-05-09 오전 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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