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손길 행복의 발길
사섭법과 육바라밀의 첫째 덕목인 보시.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에서 보시의 의미와 공덕을 설하고 있는데, 자비심으로써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를 권하고 있다. 결국 보시는 집착 없는 마음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시’ 하면 불자들의 기와, 범종, 불상 조성 등의 불사 후원만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스님들이 독경을 하거나 법문을 하는 것 그리고 불교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것도 훌륭한 보시다. 결국 보시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를 초월해 이떠한 상(相)에도 집착함이 없는 보살행이자 신행의 첫걸음인 셈이다. 보시섭의 현대화된 형태인 복지불사와 자원봉사행을 통해 불국토를 앞당기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 현대의 ‘보시법’ 복지
▲불교복지, 얼마나 성장했나?
불교복지는 지난 98년 이후 큰 폭의 외형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불교사회복지정보지원센터가 2003년 5월 현재 집계한 불교 사회복지시설은 총 468곳. 지난 98년 292곳에 비해 37.6%(176곳)가 늘었다. 시설별로는 자원봉사기관 75.0%(9곳), 장애인 56.7%(17곳), 아동 54.1%(73곳), 노인 45.7%(42곳), 지역복지 12.5%(5곳) 등의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전체 불교복지 시설 중 44.5%(208곳)를 차지하는 아동시설의 증가요인은 불교계가 어린이 포교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가 여성의 육아권 보호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시설을 증설했기 때문이다. 또 노인 및 장애인 시설의 증가는 불교복지 서비스 영역이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넓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노인복지의 경우, 지난 2000년을 고비로 65세 이상 노령층이 전체 인구대비 7%를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현재 불교계 노인복지 시설은 총 92곳으로, 매년 소폭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들 시설 중 불교계 노인복지사업을 이끌고 있는 곳은 연꽃마을과 인덕원을 꼽을 수 있다.
한편, 청소년ㆍ지역복지ㆍ여성ㆍ노숙자 시설들은 98년과 같은 수준인 31, 5, 1곳에 각각 머물러 있고, 의료기관은 단 1곳만이 늘어났다. 오히려 줄어든 복지시설도 있다. 98년 IMF 관리체제 당시 개설된 노숙자 시설은 4곳에서 1곳이 감소했다. 이들 시설이 줄어든 원인은 여성, 노숙자 시설 등 소단위 시설운영의 외면, 스님과 신도들의 인식 부족 때문으로 분석된다.
▲풀어야할 과제는?
시급한 과제는 늘어난 몸집에 걸 맞는 ‘내실 다지기’다. 시설 수탁 위주의 사업 전개, 외형 갖추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초기 단계를 지난 만큼,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불교복지 프로그램 개발, 불교 사회복지 전문 인력 양성, 후원금 모금 방법 체계화, 자원봉사 활성화 등에 나서야 할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또 한 가지. 불교복지 전반의 편중현상 극복이다. 아동ㆍ노인 등 특정 분야 집중을 비롯해, 일부 지역과 도심에 몰려있는 시설들, 단순 노력봉사에 치우친 자원봉사 활동영역 등의 문제점은 불교복지가 풀어야할 과제들이다.
특히 불교복지의 사각지대 해소다. 시대에 맞게 불교복지 분야를 다양화해야 한다. 다원화 사회에 맞는 여성ㆍ인권ㆍ환경 문제 등에 부응하기 위한 복지시설 확충이 뒤따라야 한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 시대에 발맞춰, 각 교구본사별로 소외된 분야의 시설 설립과 종단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복지원 설립 등 제도적 지원체계 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이호걸 총무부장은 “불교복지가 단 기간에 외형적인 성장세를 보인 만큼, 지금은 복지서비스의 질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자원봉사’ 시대
불교복지의 양적 팽창은 활발한 불교의 대사회 활동을 가능케 했다. 이제는 불교자원봉사 활성화와 후원금 모금 프로그램 개발 등 불교계 참여주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자원봉사 실태는 이 같은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및 수요는 늘고 있는 반면, 이를 조직적으로 관리ㆍ교육하고 활용할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했다.
현재 자원봉사 양성기관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천태종사회복지재단, 진각종사회복지재단과 불교자원봉사연합회 등 총 12곳에 불과하다. 공식ㆍ비공식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불자가 최소 10만 명 이상임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봉사활동 분야의 편중현상도 문제다. 무료급식, 간병, 발 관리 등 몇몇 분야의 인력만을 양성하다보니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올해 초 발표한 ‘자원봉사 활동 현황’에 따르면, 2002년 자원봉사 활동시간 총 3만6천637 시간 가운데, 식사지원(음식조리, 밑반찬 배달) 등의 단순 노력봉사활동이 전체 봉사활동 시간에 40%(3만7천986 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돼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호스피스, 의료지원, 한방요법 등 전문분야는 물론 전체적인 자원봉사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문제는 체계적인 자원봉사 관리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단순 교육과 파견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연꽃마을이 자원봉사자 통합전산관리시스템을 개발, 산하 시설의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내용을 분석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관리 자체를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교복지 전문가들은 자원봉사자의 ‘교육-파견-재교육-보상’ 등의 관리순환 시스템이 완비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대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신행문화의 인식전환이다. 불자라면 당연히 자원봉사활동을 한다는 신행풍토의 조성이다. 또 자원봉사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봉사 영역의 다각화ㆍ전문화 △자원봉사 상여보험 가입 등의 보상체계 및 지원프로그램 개발 △봉사활동인증센터 운영 △자원봉사자 중간관리자 양성교육 등이 마련돼야 한다.
불교자원봉사연합회 김애련 사무차장은 “1사찰 1봉사단 조직과 함께 자원봉사자를 어디서,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는 통합적인 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과 전문 인력의 확보, 종단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 복지, 어떤 스님이 이끌고 있나?
산 중에 머물던 한국 불교가 중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사업에 나선 것은 1990년대 초. 이 무렵부터 불모지나 다름없는 불교 복지의 토대를 일군 주인공은 바로 정련, 성운, 각현, 제원, 설웅 스님 등이다. 뒤를 이어 해성, 성덕 스님 등이 후발주자로 뛰어 들었고, 이 스님들의 노력에 의해 불교 복지는 기반을 다지게 됐다.
90년 이래 가장 큰 성과를 낸 것은 지역복지 분야. 종합복지관을 위탁해 운영하는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삼전복지관 전 관장 각우 스님, 구로복지관장 설웅 스님, 옥수복지관장 상덕 스님, 길음복지관장 제원 스님, 송광복지관장 현고 스님 등이다.
불교 복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노인복지 분야. 이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스님으로는 3개의 노인시설을 운영하는 인덕원 이사장 성운 스님과 연꽃마을 이사장으로서 안성노인복지타운 등을 운영하는 각현 스님 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관장 지완 스님이나 일산노인복지관장 상륜 스님은 물론 수많은 미신고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스님들도 불교 노인복지의 숨은 주역들이다.
장애인 복지의 선구자로는 중증 장애인 수용시설인 소쩍새마을의 원장 현각 스님, 청각 장애인 복지 선구자인 연화복지원장 해성 스님 등을 꼽을 수 있다. 영주장애인복지관장인 지현 스님도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동 및 장애인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 중인 몰운대복지관장 정련스님, 불교 자원 봉사를 정착시킨 불교자원봉사연합회장 성덕 스님, 불교 호스피스 봉사를 주도하고 있는 정토마을 원장 능행스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인 나눔의집 원장 능인 스님, 목동청소년수련관장 경륜 스님도 돋보이는 복지불사를 펼치고 있다.
■【인터뷰】“불교복지 이론 체계화하고 전문 인력 양성해야”
“그 동안 불교 복지는 정말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이제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자원봉사를 다변화하는 등 한 단계 높은 도약을 준비할 때입니다.”
지난 3월 24일 서울 논현동에 불교복지문화연구소를 개원하고 불교 복지의 이론적 토대 구축에 부심하는 김용택 교수(동국대 복지학과). 김 교수는 그 동안 불교 복지가 일군 성과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더욱 많을 것이라며 두 가지의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현대 복지 이론에 불교 사상을 접목시키는 것. 김 교수는 “불교 복지란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불교 복지 이론으로 내놓을 것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며 “불교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불교 사상에 기반을 둔 복지 이론 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둘째는 불교 복지 전문 인력 양성이다. 김 교수는 불자 개개인을 복지 자원화하는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자원봉사를 불교대학 정규 과정에 포함시키는 등 복지 교육을 강화해 자원봉사자를 꾸준히 양성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의료ㆍ환경ㆍ교육ㆍ행정 등 자원봉사 영역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02)517-3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