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수의 서원, 끝없는 정진
불자들의 본분사인 개인적인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그 공덕을 사회적 실천을 통해 보다 많은 이웃에게 회향하는 ‘깨달음의 사회화’. 이는 불교적 가치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상 및 실천 체계인 '참여불교'와 맥락을 갖이 하고 있다.
이러한 참여불교는 불교적 시민사회운동 즉, 불교NGO 활동과 복지사업, 자원봉사행 등으로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불교는 사섭법의 사회적 회향
참여불교를 가능케 하는 불교 고유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이는 불법의 가르침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닿아있다. 경전에서는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러주고 불법으로 인도하는 보살의 자세에 대해서 사섭법(四攝法)이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보살은 이 사섭법을 실천함으로써 중생교화와 수행을 병행하며 불국토를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네 가지 큰마음이 보살이 남을 대할 때 가져야할 정신자세라면, 사섭법(四攝法)은 네 가지 행동방법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섭법은 현실속에서 어떻게 구체화 될 수 있을까.
첫째 보시섭(布施攝)이란 저마다 중생이 바라는 바를 베풀어서 불법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주변을 눈여겨보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음에도 적극적으로 보시행을 펼치는 불자들이 많다. 사찰의 법회 진행을 돕는 것도 보시요.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보시이며, 법률상담, 의료서비스 등 자신의 전문직을 살려 봉사하는 것도 보시다. 그 베품에는 재시(財施), 법시(法施), 무외시(無畏施) 등이 있다. 무외시란 항상 온화한 미소와 인자한 모습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지 않고 편안함을 느끼도록 함이다.
둘째 애어섭(愛語攝)이란 부드럽고 따뜻한 언어사용을 말한다.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사람에게 더없이 큰 용기가 된다. 불자들은 언제나 상냥하고 인정이 넘치는 말로서 사람을 대하고 신뢰를 쌓아 자연스럽게 불법의 바다로 그를 인도해야 한다.
셋째 이행섭(利行攝)이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삽업(三業)이 모두 이웃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행동과 말과 뜻이 모두 진심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할 때 참된 복지불사는 저절로 이뤄진다.
넷째 동사섭(同事攝)이란 중생과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의 ‘동사(同事)’는 ‘참여불교’의 의미와 대동소이하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나 전쟁 난민들을 위한 ‘한끼 굶기운동’ 같은 것은 대표적인 동사섭 운동이다. 동사섭을 행함으로써 상대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고 동체대비가 실현된다.
이 네 가지 행동방법은 자기완성과 함께 세계의 정토화를 의미하기에, 불교시민운동과 복지사업, 자원봉사 등을 아우르는 신행의 좌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토사 주지 덕진스님은 “보살이 중생을 위로하며 불법으로 인도하는 사섭법은 불자들이 실천을 통해 선업을 쌓고 개인과 사회의 해탈과 행복을 이루는 생활속의 수행”이라고 말했다.
■불교 NGO 현황과 과제
불교 NGO의 활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회적으로 실천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실천을 통해 체화(體化)된 사상은 보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가깝게 한다. 또 관념속의 불교가 아닌 생활 속의 불교로서 그 이론적 토대를 굳건하게 한다. 여기에 불교 NGO 활동의 당위성과 중요성이 있다.
불교 NGO 활동은 통일과 민주화가 주요 쟁점이던 시대를 지나 사회 각층에서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면서 영역이 다양화됐다. 또 최근 환경 문제가 불교계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보다 전문화되고 구체적인 모습을 띄게 됐다. 불교 NGO 활동의 현안과 과제를 살펴보면서 방향성과 전망을 가늠해본다.
▲종교간의 대화
최근 이라크 전쟁과 관련 종교 간의 대화는 어느 때보다 그 당위성이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 조계사 청년회는 오는 10월까지 매달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10대 종교 성직자들을 초청, 이웃 종교를 배우는 법회를 열고 있다. 종교환경회의(공동대표 수경) 역시 환경을 주제로 종교간의 협력과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여성
여성 분야에서는 조계종 문화부장 비구니 탁연스님 임명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종단 내 비구니부 설치도 추진중이다. 불교여성개발원은 호주제 폐지를 위해 연대 활동을 벌였고, 국제여성불자들의 모임인 사키야디타(Sakyadhita)에서 주최하는 국제여성불교도회의에서 2004년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도 교계 내 여성 지위 향상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인권
미국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불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범불교대책위는 광화문 단식기도 등을 통해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또 박종철 열사 추모재를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해 불교계의 인권 의식을 대내외에 알렸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도 범불교대책위원회를 꾸려 ‘걷기시위’를 펼쳤으며, 이라크 난민 지원을 위해 불자 파견을 결정하기도 했다.
▲교단자정ㆍ개혁
참여불교재가연대가 하고 있는 ‘교단자정운동’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부정적 요소들을 감시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종교개혁 단체들의 연대모임인 ‘개혁을 위한 종교 NGO네트워크’는 ‘오늘의 종교-걸림돌과 디딤돌 모니터 활동’ 등으로 사업을 구체화시켰다. (사)불교아카데미에서 실시하고 있는 불교기관 및 시설, 단체 관리자에 대한 교육도 대중적 역량이 가진 지도자들의 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동체 운동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남원 실상사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 사업을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다. 인드라망은 (사)한생명을 설립해 현지에 귀농전문학교, 여성농업인센터, 지역발전센터를 열었으며, 중등과정 대안학교인 ‘작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도?농간 친환경적 농산물 유통 등 도농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불교생협운동본부’가 결성됐고,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은 성북동에 생협 첫 매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국제사업
가장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국제구호사업을 벌이고 있는 단체는 정토회 산하 JTS와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이웃을 돕는 사람들 등이다. 이들 단체들은 오랜 내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불교 국가인 네팔, 이라크 등에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또 우리는선우, 한국불교기아도움기구도 규모 있는 재정적 지원을 통해 티베트, 인도 등 불교 관련 국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과제
이런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불교 NGO 발전과 내적인 건강성을 위해 좀더 노력해야 할 과제도 지적된다.
우선 소수의 상징성과 명망성에 초점을 맞추거나 의존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 많은 대중이 쉽게 동참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더 큰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다양화되어야 한다. 또, NGO 활동가들의 능력이 보다 전문화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활동가들의 생활적 안정과 능력개발, 활동프로그램 개발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윤남진 참여불교재가연대 기획실장은 “교단 내부 문제에 대한 불교단체들의 자기 성찰과 활동들을 집약할 수 있는 학술운동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참여불교 이끄는 우바새, 우바이들
대승불교인 한국 불교는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함께 '하화중생(下化衆生)'을 표방해 왔지만 해방이후 교단 운영은 시민사회의 발전에 오히려 역행하거나 중생의 고통에 침묵 내지, 외면하는 듯한 인식을 심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0여 년전부터 몇몇 스님과 재가자들이 시민환경운동에 동참하면서 '시대고(苦)'와 '사회고' 해결에 적극 나선 것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불교NGO 활동을 이끈 주역들 가운데는 시민운동을 하던 재가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스님들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한창 민주화가 진행되던 시기의 시민운동에서 성직자로서의 신분이 방패막이가 될 수 있었고, 불교 신행의 특성상 스님들이 재가자를 이끌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난,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도움 없이 불교NGO를 이끌고 있는 재가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않다. 98년 종단 분규를 겪으며 태동한 참여불교재가연대를 주축으로 재가자들의 자율적인 시민운동과 교단 자정 움직임은 출가 대중의 개혁과 나란히 한 축을 이루며 불교시민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참여불교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재가단체는 연합단체로 출범한 참여불교재가연대다. 공동대표인 박광서 서강대 교수와 부설기관인 불교아카데미 윤천수 이사장, 김태제(경기불교문화원장) NGO지원분과장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달라이라마방한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박광서 대표는 인도 및 티베트 불교 지원과 함께 오는 7월 20일 개막되는 참여불교세계연대한국조직위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국제연대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불교아카데미 윤천수 이사장은 불교NGO 전문가 양성 및 불교사회화 연구지원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앞서 12년전 본격적인 불교NGO 시대를 연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대의 김동흔 운영위원장은 최근 반전평화불교대책위원회와 이라크난민돕기범불교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평화운동을 벌이면서, 이라크 현지 긴급구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자비의집과 생협 매장을 비롯 2곳의 외국인노동자 상담소를 운영하는 한편 이웃을돕는사람들을 통해 네팔에 '아침을 여는 작은 마을'을 설립해 청소년들에게 컴퓨터, 한국어 및 영어, 직업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94년 발족한 한국불교기아도움기구의 김재일 회장은 95년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UN기구인 UNHCR(UN 국제난민대책기구)와 협약을 맺고 르완다 난민돕기에 나섰다. 99년에는 지진피해를 입은 터키에 1천만원의 구호금을 전달했으며 네팔 룸비니에 2개의 초등학교를, 포카라에 중학교를 건립하는 등 빈곤층에 대한 무료교육사업을 벌이고 있다.
여성 불자들의 활동도 점차 활력을 얻고 있다.
95 년부터 98년까지 캄보디아 및 미얀마 고아와 스님들을 지원해 온 우리는선우 남지심(소설가) 공동대표는 최근 몽골불교 및 티베트 난민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불교NGO 활동가들과 관련 학자들의 토론모임인 불교포럼의 노귀남 집행위원장은 불교발전위, 사회정의위, 평화통일위 등의 활동분과를 두고 불교사회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포럼을 열어 참여불교운동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한국여성불교연합회 김묘주 회장은 산하 행복한가정상담소와 이혼예방센터를 두고 이혼 예방과 올바른 가정상 정립을 위한 세미나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불교여성개발원 이인자 원장은 여성 지도자 배출을 위한 리더십 개발 교육과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정만들기, 비구니 권익옹호 등 불교계 남녀평등 문화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우바이, 우바새들의 대사회 활동 강화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산중불교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세간과 출세간의 가교역할을 넘어, 지금 이 땅에 불국토를 실현시키려는 적극적인 보살행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