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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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의 수호성자’ 디파마 법사(上)
“디파마는 두 손을 합장한 채 기도했습니다. 그리곤 불상을 향해 엎드린 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지요. 우리가 마루에서 그를 들어올렸을 때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 절하는 자세로 열반한 그의 얼굴은 지극한 고요와 평화로움을 담고 있었습니다.”

‘주부들의 수호성인(Patron Saint)’으로 불리는 인도의 디파마(Dipa Ma Barua: 1911~1980) 법사의 이웃이자 제자인 산디프 무추띠는 스승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머니이자 주부로서, 견처를 얻은 여성 수행자의 보기드문 표본이었던 디파마의 입적 순간은 극적인 생애 만큼이나 독특한 열반상을 보인 것이다.

조지프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 잭 콘필드(Jack Kornfield), 샤론 살즈버그(Sharon Salzberg)를 비롯한 미국의 뛰어난 수행자들은 대부분 1970년대에 디파마로부터 위빠사나를 배웠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인격과 독특한 지도방식, 제자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에 매혹되었다.

조지프 골드스타인의 말이다. “우리의 일생동안 평범함을 벗어나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디파마가 그런 분이었다. 언제나 자비심이 넘쳐흐르던 그는 가장 고요한 평화를 간직한 분이었다. 그의 고요함과 깊은 자비심은 어느 수행자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샤론, 잭, 조지프는 디파마의 제자가 되어 인도 캘커타의 작은 아파트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그들은 미국 매사추세츠 바르에 설립한 위빠사나 명상센터에서 두 달간의 수련회를 열어 줄 것을 디파마에게 요청했다. 여기서 수백여명의 미국 수행자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위빠사나 수행에 깊이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디파마는 전통 위빠사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제자들이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챙김(mindfulness)할 수 있는 특별한 수행법을 고안했다. 그는 마음챙김이 말하기, 다림질하기, 요리, 쇼핑, 아기 돌보기 등 어떤 순간 어떤 활동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을 관찰하세요.”라는 말로 요약된다. 디파마는 일상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명상의 힘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기에, 추종자들은 그를 ‘주부들의 수호성인’이란 별명을 붙이게 되었다.

<스승 디파마의 가르침(Knee Deep In Grace: The Extra Ordinary Life and Teaching of Dipa Ma)>의 저자인 애미 슈미트(Amy Schmidt)는 디파마의 가르침을 통해 "붓다의 길은 바로 지금 이 삶속에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80년대에 디파마가 미국을 두 번 방문했을 때, 저자가 직접 접한 가르침과 일화를 중심으로 엮은 책(Present Perfect Books 펴냄)이다.

디파마는 1911년 3월 25일 미얀마와 국경이 맞닿은 동부 벵골의 마을에서 나니 발라 바루아(Nani Bala Barua)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은 벵골의 바루아족 혈통으로 인도 원시 불교도들의 후손들이었다.

비록 주부들이 명상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많은 가족들이 불교 의식과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린 나니는 특히 이런 불교의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동네 사원에서 공양물을 올리고 불상을 조성하는 스님을 돕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마미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지식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마을에서 여자가 학교에 가는 것은 전통적으로 드문 일이었지만, 나니는 진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저녁이면 그녀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내용을 갖고 부모와 대화하는 광경을 수시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좋아했다.

그러나 적어도 인도에서는, 소녀의 청소년기는 일찍 막을 내리기 마련이었다. 문화적인 풍습에 따라, 나니는 12살에 학교와 부모의 곁을 떠나 25세의 신랑 라자니 란잔 바루아(Rajani Ranjan Barua)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는 친척의 집에서 14살까지 살다가 새로운 삶을 찾아 미얀마의 수도 랭군(Rangoon)으로 보트를 타고 떠나 얼굴을 안지 1주일 밖에 안되는 낯선 남자의 가족이 되었다. 신랑인 라자니는 친절하고 친절해서 둘 사이의 신뢰와 사랑은 깊어만 갔다.(계속)
김재경 기자 | jgkim@buddhapia.com |
2003-05-08 오전 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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