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교황청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4월 29일 봉축 메시지를 발표했다.
바티칸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마이클 피츠제럴드 대주교는 ‘그리스도인과 불자: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제목의 축하메시지를 통해 “그리스도인과 불자가 함께 기도함으로써 세계평화 증진에 공헌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평화가 부처님 오신 날에 그리고 모든 날에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안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도 봉축메시지에서 “어려운 시기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게 된 불자 여려분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는 그 어느때보다도 크다”며 “우리가 그동안 함께했던 사랑의 여정을 계속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한반도와 인류평화에 함께 기여하게 되기를 축원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교황청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표한 봉축메시지 전문이다.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봉축 메시지>
그리스도인과 불자: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친애하는 불자 여러분,
로마 교황청의 다른 종교 전통과의 관계를 위한 부서인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의 새 의장으로서, 저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인사를 드리며 이 축하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의 선임자인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께서 1995년에 시작하신 이 우정의 행위는 이제 거의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 좋은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며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진심어린 축하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불자 여러분, 저는 이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에게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에 동참하자는 초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작금의 국제 정세를 바라보며 우리는 세계 평화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새 천년의 출발이 2001년 9월 11일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진 이래, 우리는 매일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유혈과 폭력, 대결과 위기의 장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세계 평화의 증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우리 삶을 결코 영위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과 불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분쟁의 기원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주 이기적인 욕망, 특히 권력과 지배 그리고 재물에 대한 욕망에 빠지며, 또한 이러한 욕망은 흔히 다른 사람들을 그 대가로 삼습니다. 한편 평화란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실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아야만 한다는 것 또한 우리의 공통된 신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길이란 바로 사람들 마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기심이 극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하여 사람들을 평화의 진정한 일꾼으로 변화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오는 2003년 10월까지 한해를 동정 마리아의 묵주 기도(Rosario)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은 세계 평화를 위해 이 묵주 기도를 자주 염하기를 진심으로 권고하셨습니다. 묵주 기도가 다시 활성화되기를 바라시는 교황님의 바람은 현재의 역사적 상황, 곧 그 어느때보다도 평화의 위대한 선물에 대한 끊임없는 간구가 더욱 필요한 이 시대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불자 여러분, 여러분 역시 염주(Mala)를 사용하여 기도하는 기나긴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정말 멋진 우연의 일치가 아니겠습니까? 가톨릭 신자의 묵주 기도와 불자의 염주 기도는 단순하지만 매우 심오하고 뜻 깊은 기도입니다. 물론 이 두 기도는 두 전통의 교리와 실천이 상이한 만큼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에게 묵주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관상을 촉진하는 가장 효과적인 한 수단입니다. 불자에게 염주 기도는 열반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백팔 번뇌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 두 기도는 그 명상적인 성격에 힘입어 사람들에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하는 효과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두 기도는 이 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를 경험하게 하고 또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 기도는 사랑의 열매를 맺게도 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는 복된 하느님 삼위의 거룩한 이름들과 동정 마리아의 이름을 되뇌이며 하는 명상을 통해 그들이 그분들의 인간에 대한 사랑,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더욱 열심히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여러분의 불교 전통에서도 염주 기도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닮게 하며 그들이 참된 평화의 일꾼이 되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친애하는 불자 여러분, 이것이 제가 올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현재 및 미래의 세계 평화 증진에 공헌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 평화가 부처님 오신 날에 그리고 모든 날에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안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3년 5월 8일 부처님 오신 날,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마이클 피츠제럴드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봉축메시지>
불기 2547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이 땅의 모든 불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그 동안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과 불자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민족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국민의 아픔에 동참하고,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면서 함께 힘을 모아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랑의 여정이 계속되기를 염원합니다.
인류는 지금 전쟁의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전쟁이 끝난 뒤에는 피해자의 가슴에 맺힌 한이 증오와 미움으로 표출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어찌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예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많은 사람이 영, 육의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우리 동포들도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게 된 불자 여러분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클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하여 손을 잡고 그 동안 함께했던 사랑의 여정을 계속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평화,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평화에 함께 기여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한 번 불자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크신 자비를 기원합니다.
불기 2547년 부처님 오신 날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