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방송작가, 솟대문학 발행인
여러분은 어느 때 가장 화가 나세요?
만약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앞을 가로 막으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불쾌해서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고 화를 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한테만 출입을 막는 것은 차별일 뿐 아니라 심각한 인권 침해로 하나의 폭력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은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법적인 조치가 내려지지만 장애인을 출입금지 시킨 행위는 명백한 폭력인데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출입이 금지된 사회,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아마 우리가 언제 장애인의 출입을 막았느냐고 언성을 높이실겁니다.
모든 건물 앞에는 통과의례인양 계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의 출입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계단을 간신히 넘으면 건물 안에 더 높은 계단이 장애인의 출입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장애인 편의 증진법’으로 공공건물에 편의시설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새로 짓는 건물에는 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장애인용 화장실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편의시설은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하나의 장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계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그 장식조차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비 정신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적어도 겉으로는 약자 편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새 정부는 출범의 일성으로 사회 5대 차별 해소를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 장애인, 저학력자, 비정규직 근로자, 외국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았던 편견과 차별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발 빠르게 참여복지라는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참여복지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우선 여성이다, 남성이다, 장애인이다, 비장애인이다 하는 구분이 없어지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이런 차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그런 세상이 바로 불국토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고 싶어 하셨던 것은 다름 아닌 차별받고 있는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그 불쌍한 중생 가운데 가장 어여삐 여겨야할 중생은 장애인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식물이 아니어서 움직여야 살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식물로 살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합니다. 장애인이 식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장애인복지 제도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장애인이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일이 더 필요하고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매년 장애인의 날이 되면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자고, 장애인과 함께 하자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그 호소는 메아리가 없는 헛외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 장애인의 날은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요구하고 그 요구에 즉각적이고도 분명한 답변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우리 불교계에서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