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동안거와 하안거 사이에 속세로 나아가 사람들과 부대끼며 베풀고 가르치며 배우는 '만행(萬行)'. 수행자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순간 '자기'라는 것이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고도 단호하게 수행한다. 속세에서 매순간 성지 순례하는 심경으로 나아간다. 일반인들의 삶 또한 만행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들의 만행은 무의식의 여행이란 특징을 갖는다. 의식 속에 떠오르는 난데 없는 생각의 끈을 잡고 무의식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만행이자 성지순례가 된다.
<물고기 남자 1, 2>(권병두-강승귀 글, 이중삼 그림)는 만행을 일삼는 인간의 무의식을 우화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다. 삶의 비밀이 담겨있는 무의식. 생명의 원형이 바탕에 깔려 있고 과거와 현재의 지구촌 소식이 메아리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외로워하며 울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물고기 남자'이다.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뚱이는 물고기인 '괴물'이 곧 자신의 모습이다.
지은이는 40대 샐러리맨이 '살아있는 화석 물고기' 실러캔스로 변하는 돌연한 사태를 제시한다. 그렇게 변해 있는 사내에게 실러캔스 예언자가 접근한다. 그는 모르쇠로 점철된 세상을 보여 주며 모든 고통과 번민에서 치유받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인도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무인도에 닿기 위해서는 4개의 섬을 거쳐야 한다. 그 섬들은 쾌락 망각 환상 회의 등 인간의 욕망이 변형되어 땅을 이루고 숲을 이루어 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곳이다. 각 섬에는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인간들이 가득하다. 각 섬에서 만난 화신들과 괭이갈매기의 도움으로 물고기 남자는 가까스로 그 섬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고기 남자가 찾고자 하는 무인도는 깨달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물고기 인간이 닿은 곳은 바로 '현재 이곳'이다.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살지 못하는 무인도. 깨달음은 각자가 하나의 섬이라는 전제에서 얻을 수 있다. 숭고한 깨달음과 번잡한 욕망이 결국 하나라는 이야기는 일상에서 지금의 고통과 번뇌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겠다. 작가는 다소 황망한 결말을 통해 일상과 욕망을 새롭게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글을 쓴 권병두-강승귀씨는 출판편집인이며 삽화를 그린 이중삼씨는 만화가이다.
물고기 남자 1, 2
권병두外 지음
도서출판 꼭사요
각권 9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