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하나의 건축물에 비유했을 때, 무아(無我)와 윤회는 빠질 수 없는 두 기둥이다. 붓다는 윤회를 인정하면서도 무아를 가르친 셈이다. 그러나 고정불변의 ‘나’가 없다면 누가 윤회하고, 누가 업을 짓고 받는다는 말인가?
초기불교 당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무아-윤회’ 문제가 최근 다시금 불붙고 있다. 지난 2월 제7차 선우논강에서 각묵 스님이 “한국 불교는 진아(眞我)니 불성이니 여래장 따위의 신비주의적 개념에 집착하면서 ‘연기’와 ‘무아’로 요약되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해 불교 내부에서 ‘진아’ 논쟁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발간된 <오늘의 동양사상>(예문동양사상연구원, 반년간) 봄ㆍ여름호는 ‘윤회의 주체’ 문제를 특집(무아-윤회)으로 다뤘다.
앞서 각묵 스님에 의해 촉발된 논쟁과 달리 이번 논쟁은 ‘김진’(울산대 철학과 교수)이라는 서양철학(칸트) 전공자가 <칸트와 불교>라는 책을 통해 “‘무아’와 ‘윤회’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으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칸트의 ‘요청적 사유방법론’을 끌어들어야 한다”고 포문을 연 데서 비롯됐다. 이에 한자경 교수(이화여대 철학과)는 “자기 동일적 실체가 있어야만 하나의 자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고, 김진 교수는 다시 “연기적 인과설을 통해 실천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윤회적 자아 주체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무아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재반박했었다.
이번 호에서 김-한 교수의 대리전을 펼친 조성택 교수(고려대 철학과), 김종욱 박사(동국대 강사), 최인숙 교수(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불교학과 서양철학을 두루 꿰고 있는 학자들. 이들은 서양철학의 ‘공격’에 대해, 그 구체적 접근 방법은 다르면서도 “무아와 윤회를 대립적으로 설정하는 김진 교수의 불교 이해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는 의견 통일을 이뤘다.
조성택 교수는 먼저 “무아와 윤회가 모순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아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불교 수행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수행의 관점에서 무아설은, 윤회를 믿고 업과 과보의 도덕적 인과 관계를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아를 정견으로 ‘믿는’ 단계와 ‘고정불변의 나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완전히 제거하는 두 단계가 있다”며 “이 두 단계가 수행의 진전에 따른 서로 다른 차원의 무아설임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욱 박사는 “칸트처럼 이원성에 토대를 둔 서양철학에서는 현상적 자아의 배후에 참된 자아를 상정하고 거기에 자기 동일성적 주체성을 부여하지만 이런 방법과 내용은 비이원성을 골간으로 하는 불교의 중도적 무아설이나 무아윤회론에는 제대로 들어맞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예문동양사상연구원 인도ㆍ불교철학 연구실장 이덕진 교수(창원전문대)는 “김진 교수의 견해는 불교 역사의 굵은 한 줄기, 즉 불교를 타력종교화, 브라마니즘화하려는 의도를 끊임없이 내비치는 사람들의 주장을 역설적으로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며 “‘동ㆍ서양철학의 대화와 소통’이라는 점 외에 불교 내부적으로도 현재 모습에 대한 자성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