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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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계종 종정 서암스님 29일 원적
전 조계종 종정 서암스님이 3월 29일 오전 7시 50분경 봉암사 염화실에서 열반에 들었다. 세수 87세, 법랍 68세.

서암스님은 원적에 들기 하루 전 태고선원을 비롯한 봉암사 대중 1백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달리 할 말이 없다. 누가 (열반송을)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고 말한 뒤 염화실로 돌아와 29일 오전 입적에 들었다.

봉암사와 조계종 총무원은 서암스님의 영결식을 4월 2일 오전 10시 봉암사에서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봉행한다. 다비식은 영결식에 이어 봉암사에서 진행된다.

서암스님 행장(略譜)

1917년 10월8일 경북 안동군 녹전면 구송리에서 嚴父 宋東植님과 慈母 申東卿님의 5男1女중 三男으로 탄생. 본명은 鴻根. 부친의 독립항쟁으로 참담한 유랑생활 도중에서도 마을 서당과 단양의 대강보통학교, 예천의 대창학원 등에서 한학과 신학문을 修學, 그 영민함으로 '천재소년'으로 불리워짐.
1932년(16세) 경북 예천 西嶽寺에 出家, 3년간 머슴과 같은 고된 行者생활.
1935년(19세) 경북 문경 金龍寺에서 華山스님을 恩師로, 낙순스님을 戒師로 沙彌戒를 受戒
법명은 鴻根. 수계후 김룡사 講院에서 修學
1937년(21세) 김룡사에서 金烏선사를 戒師로 比丘戒와 菩薩戒를 受持. 大德法戒를 稟受.
법호를 西庵으로 받음.
1938년(22세) 김룡사 강원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日本大 宗敎學科 入學.
1940년(24세) 당시 사형선고와 같은 폐결핵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歸國.
1941년(25세) ‘세상에서의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으로 각혈을 하면서도 대창학원에서 학생 들을 指導.
1942년(26세) 죽음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헛되다고 돌이키시고, ‘이제부터 생사의 근본 도리를 놓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시고 金龍寺 선원에 안거.
1943년(27세) 북쪽으로 만행중 철원 深源寺에서 1년간 화엄경을 講義.
1944년(28세) 금강산 摩訶衍에서 하안거. 大乘寺 바위굴에서 性徹스님과 함께 동안거.
1945년(29세) 大乘寺에서 靑潭,性徹스님과 하안거.
해방을 맞아 예천의 대승사 포교당에서 징병?징용당하여 죽음의 땅에서 돌 아오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보살행을 실천함과 동시에 불교 청년운동을 전개.
1946년(30세) 계룡산 羅漢屈에서 단식하며 용맹정진 도중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한갓 공 허한 그림자처럼 사라짐.
덕숭산 定慧寺 滿空스님 회상에서 안거
1947년(31세) 가야산 海印寺에서 曉峰스님 회상에서 안거
望月寺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동안거
1948년(32세) 지리산 七佛庵에서 金烏스님를 모시고 ‘공부하다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를 쓰고 道川스님등과 함께 결사정진.
1949년(33세) 광양 上白雲庵, 보길도 南隱寺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정진.
계룡산 獅子庵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정진.
계룡산에 精進窟을 짓고 동안거
1950년(34세) 계룡산 精進窟에서 하안거. 上院寺 漢岩스님 회상에서 동안거
1951년(35세) 계룡산 精進窟에서 하안거. 속리산 福泉庵에서 동안거.
1952년(36세) 계룡산 精進窟에서 하안거. 청화산 圓寂寺에서 동안거.
1953년(37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4년(38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하안거, 속리산 中獅子庵에서 동안거.
1955년(39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6년(40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7년(41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8년(42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하안거. 梵魚寺 金魚선원에서 동안거
1959년(43세) 함창포교당에서 안거.
1960년(44세) 桐華寺 內院庵에서 하안거. 상주 청계산에 토굴을 짓고 동안거.
1961년(45세) 청계산 토굴에서 안거.
1962년(46세) 태백산 弘濟庵에서 안거.
1963년(47세) 김룡사 金仙臺ㆍ圓寂寺ㆍ鳳巖寺를 오가며 정진
1964년(48세) 김룡사 金仙臺ㆍ圓寂寺ㆍ鳳巖寺를 오가며 정진
1965년(49세) 태백산 覺華寺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안거.
1966년(50세) 도봉산 天竺寺 無門關에서 안거
1967년(51세) 김룡사 金仙臺에서 안거
1968년(52세) 금정산 梵魚寺 內院암에서 안거, 제주도 天王寺에서 동안거.
1969년(53세) 김룡사 金仙臺ㆍ상주 甲長寺에서 안거
1970년(54세) 圓寂寺에 다시 주석.
구산선문 曦陽山 鳳巖寺 祖室로 추대되시었으나 固辭하시고 禪德소임을 자청하여 원적사를 오가시다가, 1979년 이후부터 조실로 계시면서 승풍을 바로 잡으시며 낙후된 가람을 새롭게 중창,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제정하여 선풍을 드날리며 衲子들을 提接하심
1975년(59세) 제10대 曹溪宗 總務院長을 2개월 동안 역임.
1991년(75세) 조계종 元老會議 議長
1993년(77세) 제8대 曹溪宗 宗正으로 추대.
1994년(78세) 宗正職과 鳳巖寺 祖室을 辭任하시고 거제도, 삼천포, 팔공산 등지를 거쳐서 태백산 자락에 가건물을 지어 無爲精舍라 이름하고 無爲自適하심.
2001년(85세) 봉암사 대중의 간청에 의하여 8년만에 봉암사 염화실로 다시 돌아와 閑居하심.
2003년(87세) 봉암사 염화실에서 3월 29일 오전 7시 50분 무렵에 열반.


다음은 현대불교신문에 실린 서암스님 법문.

304호 [2001-01-24] 【가까이서 뵌 큰스님】서암스님

아찔한 높이의 무소유 그리고 무위의 삶. 가까이서 뵌 서암 큰스님의 하루하루는 그랬다. 그렇다고 범인은 다가서지도 못할 경지에서 ‘할’과 ‘방’을 휘두르지도 않으셨다.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 솟은 선달산 자락에 자리잡은 무위정사(無爲精舍). 서암 큰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시는 곳. 그곳을 오르는 길은 새하얀 눈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저잣거리로 향한 발자국이 없었다. 하지만 결 고운 비질로 열어 놓은 눈길은, 산으로 드는 이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 눈길에 산골은 뭐 하러 오셨어. 늙은 노인네한테 무슨 좋은 말 들을 게 있다고. 번잡한 얘기 할 것 없이 조용한 곳에 왔으니까 그냥 며칠 푹 쉬었다 가.”미처 격을 갖추어 인사도 여쭙기 전에 객을 맞는 큰스님의 첫 말씀이다. 순간,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은 따스함으로 채워진다. 이미 주객의 경계는 흔적조차 없다. 그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수 여든 여덟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꼿꼿하셨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뵙자니 주눅부터 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럴수록 괜한 오기가 발동한다. 당돌해지기로 작정을 하고 대뜸 이렇게 여쭈었다. “평생 수행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공부가 가장 잘 되셨던 곳은 어느 도량이었습니까?”“난 항상 못난 중이었어. 공부가 잘 된 적도 없었고. 그렇게 알면 돼.”처음부터 시치미를 떼신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어리광을 부리듯 다시 여쭈어 본다. “그래도 환희심을 느끼신 적은 있으셨을 것 아닙니까.”

“그거야 여러 번 있었지.”
“그 얘기 좀 들려 주십시오.”
“그까짓 얘기야 다 쓸데없는 소리지. 앞으로 우리가 무얼 할 것인가 하는 그런 뼈 있는 얘기를 해야지 지나간 발자취 들여다 보면 뭘해.”갈수록 아득해진다. 하지만 내친 걸음. 변죽을 울리면 복판이 우는 법. 숫제 떼를 쓰듯이, 미련한 곰처럼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래도 후학들에겐 아주 요긴한 말씀일 것 같은데요.”

그래도 스님께서는 쉽게 일러주지 않으신다.
“나는 자랑할 만한 것, 일러줄 만한 그런 게 없어. 못난 중이거든. 물론 깜냥대로는 공부에 진취가 있고, 불교를 다 안 것 같고 한 때가 있었지. 하지만 돌이켜볼수록 남들한테 큰소리칠 자신이 없어.”말씀이 이쯤 되고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여쭤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솔직히, 야속함마저 든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이 난감한 상황을 침묵에 맡기는 수밖에는.

제법 긴 침묵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러다 문득 스님께서 말씀을 이으신다. 마치 남의 얘기하시듯. “도봉산 망월사에서 한 생각 돌이켰지. 불교의 깊이를 좀 느꼈어. 그리고 또 저 계룡산의 나한 토굴이라는 바위굴에서 애를 좀 썼지.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한 달을 보내기도 하며 삼동을 났어. 그 때도 허송세월하지는 않았지. 이런 얘기도 다 부질없어. 평생 절에 살면서 늙어간 사람이 큰 절 작은 절 안 가본 데가 있었겠어. 지금은 우르르 떼지어 놀러들 다니는 금강산의 마하연, 유점사, 장안사 신계사는 물론이고 백두산 근처까지도 두루 돌았지. 철원의 심원사에서는 1년 이상 강사 노릇도 했고. 참 오래 전의 일이야. 광복 전의 일이니까. 지금 그런 얘기한다는 것도 우스워.”
꿈결에서나 이런 얘기를 들을까 싶어, 좀더 스님의 얘깃자락에 매달려 본다. “광복 후에는 어디서 공부 하셨는지요.”

“계룡산에서 내려온 다음이었어. 그때 처음으로 해인사에 총림을 열었는데 효봉 스님을 방장으로 모시고 정진을 했지. 한 100명 이상이 모였었는데, 당시 쟁쟁한 스님들은 다 있었지. 동산, 청담, 경봉, 설봉 스님을 비롯하여 다들 도인이셨지. 그러다 6·25가 나서 뿔뿔이 흩어졌고.”

이 말씀 끝에 기자의 속물 근성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때 가장 가까이 지내셨던 스님은 어느 분이십니까?”
“가까이? 이 사람아, 그건 재가에서나 하는 얘기지 스님네들끼리 가깝고 멀고가 어디 있어. 모두들 한솥밥 먹고 지내는 데 다 가깝지. 다만 수행하는 힘이 장한 스님들한테는 존경이 갈 뿐이야.”이러한 스님의 면모는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잠시 여기서, 무위정사에서 머물며 출가의 결심을 굳힌 한 행자에게서 귀동냥한 얘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큰스님 곁에서 6개월 동안 머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사람에 대한 차별을 두시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별 네 개를 단 장군이건 금뱃지를 단 국회의원이건, 지나가던 사람이든 시골 아낙네든, 조금도 차별을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또 아주 몸이 불편하시더라도 찾아
박봉영 기자 | bypark@buddhapia.com |
2003-03-29 오전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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