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백년의 큰 계획”. 너무나 잘 알려진 말이라 식상하기 쉽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는 불교가 전성기를 누리며, 찬란한 당나라의 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당나라가 세계의 중심 국가였다는 점에서 불교가 당시 세계문명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불교는 송대 이후 쇄락의 길을 걷게 된다. 중국문화의 주변으로 밀리더니 근대에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미신의 탈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새로운 문명을 창출할 도제 양성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일본불교는 어떠한가? 극심한 문화의 변동기를 겪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근대 이후 일본정부의 신불분리정책에 의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군국주의의 등장은 불교의 재산을 빼앗아 신도를 부흥시키게 된다. 이에 일본불교계는 우수한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근대문명의 중심지인 유럽으로 유학을 보낸다. 위기 돌파의 한 방법으로 인재 양성에 매진한 것이다. 이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일본불교계의 동량들이 일본 사회와 불교계의 근대화에 이바지 하게 된다. 불교가 일본사회의 주도적 위상을 차지한 것은 물론이다.
천태종이 종립 금강대학교를 개교하여 첫 입학생들의 입학식을 거행했다는 소식이다. 동국대학교, 위덕대학교에 이은 세번째 불교계 종립대학이지만 천태종에선 최초의 교육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과 일본 불교계의 역사적 전철을 거울삼아 종단 발전의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